2020/04/25

[과학철학] Putnam (1981), Ch 5 “Two conceptions of rationality” 요약 정리 (미완성)

     

[ Hilary Putnam (1981), Reason, Truth and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03-126.
  힐러리 퍼트넘, 「5장. 합리성의 두 개념」, 『이성・진리・역사』, 김효명 옮김 (민음사, 2002), 177-212쪽. ]
  
  
  1. Logical positivism
  2. Anarchism is self-refuting
  3. Why relativism is inconsistent
  4. What to make of this?
  
  
  1. Logical positivism


  2. Anarchism is self-refuting

113, 192
-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개종’(conversion), ‘형태 변환’(Gestalt switch)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과학 이론의 수용에서 비-합리적 결정요소들을 강조함.
- 퍼트넘은 쿤의 “극단적 상대주의”라고 표현했던 점만 논의하고자 함.
 
[pp. 113-114, 192-193쪽]
- 미숙한 독자들이 쿤이 과학에서 합리적 정당화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했으나, 쿤은 그러한 해석을 거부하고 ‘비-패러다임적 합리성’(non-paradigmatic rationality)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함.
• 이 개념은 퍼트남의 ‘비-기준적 합리성’(non-criterial rationality)과 연관됨.
- 파이어아벤트도 상이한 문화와 역사적 시기에 따라 합리성의 패러다임도 달라짐을 강조함.
•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부를 요소라는 것.
- 퍼트넘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쿤과 파이어아벤트의 공약불가능성 논제
-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자가당착적 주장이라는 것.

[pp. 114-115, 193-194쪽]
- 공약불가능성 논제(incommensurability thesis)는, 다른 문화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나 표현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논제
- 쿤: 다른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과학자들은 ‘다른 세계들’에 산다.
• 예) 1900년에 사용된 ‘전자’는 하나의 ‘세계’ 속의 대상들을 지시함. 이는 오늘날의 사용에서는 다른 ‘세계’ 속의 대상들을 지시함.
- 공약불가능성 논제는 ‘이론 언어’ 뿐만 아니라 ‘관찰 언어’에도 적용된다고 함.
- 공약불가능성 논제가 참이라면 우리는 다른 언어를 번역할 수 없을 것
- 그런데 갈릴레오가 ‘공약불가능한’ 개념들을 가졌다고 말한 다음, 그 개념들을 서술한다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

[pp. 115-116, 194-197쪽]
- 스마트: “파이어아벤트는 우리가 망원경에 관한 이론을 갖추기 위해서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상대론적 광학을 사용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할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관찰적으로 시험해보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부당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예측한 것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더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임을 (관찰의 오류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론적인 근거에서 잘 알기 때문이다.”
- 퍼트넘: 예측들이 동일하다는 점을 말하려면 우리가 유클리드적 비-상대론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함.
• 모든 말이 다른 의미를 가진다면 모든 예측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 의미와 번역에 관한 콰인과 데이비슨의 주장
• ‘진정한’ 동의어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은 신화에 불과함.
- 예: 독일어 ‘Rad’가 영어 ‘wheel’로 번역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고 가정하자.
• 그 번역이 완벽하지 않다고 한다면, 주석 등으로 보완하여 그 번역을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을 기대할 것
• 그러나 ‘Rad’가 ‘wheel’로 번역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바퀴나 우리의 개념 체계의 어떤 대상도 지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 A가 ‘바퀴’나 다른 무엇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말은, 그 번역을 신뢰할 수 있는 한, A가 바퀴를 지시한다는 말과 같음.
  
[pp. 116-117, 197-198쪽]
- 공약불가능성 논제가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은, 개념(concept)과 개념작용(conception)을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 문제가 된 ‘개념’과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기온’이라는 말을 번역할 때 그 말의 지시와 번역된 표현의 의미를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기온’의 말의 의미나 지시와 동일시한다는 것.
• 이렇게 동일시하는 것은 17세기 과학자들이 기온에 관하여 우리와 동일한 개념작용, 동일한 믿음 체계를 가졌다는 뜻은 아님.
• 17세기 과학자들은 우리와 다른 ‘지식상’(images of knowledge), 다른 믿음을 가졌을 수 있음.
• 그러나 우리가 번역할 수 없다면, 생각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과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수도 없을 것임.
- 가능한 물음: 개념작용들이 항상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번역 도식(translation scheme)이 ‘작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 번역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원본을 쓴 사람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과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원본을 쓴 사람의 믿음을 이해할 수 있기만 하면 됨.
• 이것이 번역상의 관용이나 무죄 추정(benefit of the doubt)에 대한 다양한 격언들의 기초를 이룸.
•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바람과 발언 등을 모두 어떤 의미를 가지게끔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상이한 문화권에 살면서도 역사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개별적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인간 경험의 사실임.

[pp. 117-118, 198-199쪽]
- 쿤과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적 지식이 수렴된다는 어떠한 생각도 거부함.
• 오늘날 과학자들이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전 과학자들이 논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다르므로, 동일한 대상들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 쿤: 과학이 도구적 의미에서만 ‘진보’하는 것일 뿐.
• 예) 교통수단이 점점 좋아지는 것
- 퍼트남은 쿤의 주장이 비-일관적이라고 함.
•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긴다”는 말이 고정된 지시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도구적 성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안정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 퍼트남의 논변은 경험적 지식의 선행 조건들에 관한 칸트의 논변과 관련됨.
- 칸트에 대한 비판: 미래는 법칙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는 세계일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귀납’이 반박될 수 있다.
- 칸트: 미래가 존재한다면, 그 미래는 많은 규칙들이 위반되지 않는 세계일 것임.
• 여기서 미래는 우리가 사유자로서 파악할 수 있고 우리의 예측이 참이거나 거짓인지를 말하기 위해 개념화할 수 있는 미래.
• 규칙들이 위반되는 세계를 왜 미래라고 부르겠는가?
• 예) 공 여러 개가 항아리 속에서 ‘불규칙적인’ 순서로 나올 때 규칙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공이라는 것도 말할 수 없고 어떤 순서로 나왔는지도 말할 수 없을 것.

[pp. 118-119, 199-201쪽]
- 쿤과 파이어아벤트의 가능한 답변은, 관찰과 이론의 이분법을 도입하는 것.
• 관찰적 사실들에 관하여 공약가능성, 번역가능성, 수렴가능성을 인정하고, 공약불가능성을 이론 어휘에만 한정하는 것.
- 쿤과 파이어아벤트는 ‘이론적 언어’뿐만 아니라 ‘관찰적 언어’에서도 해석상의 관용의 원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대안을 거부함.
- 이러한 퍼트넘의 논증은 일종의 선험적 논증
• 우리는 근본적인 개념작용들에 의해 현재 시간-단면들의 우리뿐만 아니라 과거 시점의 우리, 우리의 조상들, 과거와 현재의 다른 문화의 구성원들을 사람으로 간주함.
• 이는 그들이 가지는 개념작용들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공유된 지시체들과 공유된 개념들을 그들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함.
• 우리는 해석 활동이 성공할 정도로 대상과 개념을 공유할 뿐 아니라, 합리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 등에 관한 개념작용도 공유함.
• 모든 인간은 선험적으로 사리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므로, 다른 세계의 개념을 해석할 수 있는 시도가 가능한 것.


  3. Why relativism is inconsistent


  4. What to make of this?


  
  
(2021.05.21.)
     

2020/04/24

신천지가 교회를 통째로 접수하는 방법



신천지는 교회 다니는 신자들만 포섭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나 장로를 포섭해서 교회를 아예 통째로 접수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신천지에서 목사나 장로를 포섭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교회가 통째로 넘어갈까? 담임 목사가 신천지에 감염될 때 부목사는 뭐 하고 있었으며, 장로 한 명이 감염될 때 나머지 장로들, 집사들, 권사들은 뭐 하고 있었길래 교회가 넘어간단 말인가. 3당 합당 때 김영삼이 넘어갈 때 부산-경남 넘어가듯 교회도 비슷하게 넘어가는 건가? 그래도 이해는 안 간다. 널린 게 교회인데 옆 교회나 옆옆 교회를 가면 되지 왜 나머지 신도들은 순순히 신천지 교회를 다니는가? 교회에 침투하는 신천지 사람들을 ‘추수꾼’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그들은 밭떼기를 하는 것인가?

오전 예배 보고 나서 목사님하고 대화하다가 그러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목사님은 친한 목사님 중에 신천지에게 교회를 빼앗긴 분이 있어서 교회가 신천지에 넘어가는 과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안다고 하셨다. 우선, 목사가 신천지에 넘어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매우 낮다고 한다. 일단, 대부분의 목사들은 정상적인 신학교를 졸업하기 때문에 이상한 교리에 노출된다고 해도 거기에 넘어갈 가능성이 낮고, 또 목사들끼리 수시로 공부 모임 등 모임을 가지기 때문에 신천지가 침투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목사가 신천지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교회를 통째로 신천지에 넘어가는가? 단번에 목사나 직급 높은 사람들이 신천지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추수꾼들을 교회에 몇 명 보내본다고 한다. 그렇게 보낸 사람들이 교회에 정착하면 분위기 봐서 몇 명 더 보낸다. 그렇게 몇 명씩 계속 보내서 교회 내 신천지 사람들의 숫자를 늘린다. 교회에서 신천지 사람들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추수꾼들은 그렇게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사교적이어서,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인 줄 안다고 한다. 그렇게 교회에서 신천지 신자들이 서서히 늘어나면서 기존에 다니던 신자들을 포섭하고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다가 교회를 접수할 임계치가 넘어가면 목사를 내쫓고 신천지 목사를 데려온다고 한다. 그렇게 벽돌 한 장 안 쌓고 멀쩡한 교회 하나를 낼름 먹는 것이다. 그렇게 접수하면 또 다른 교회로 추수꾼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나는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싶었다. 15년 전쯤에 어느 진보정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런 사례들을 모아 보면, 조직 침투 및 접수에 관한 일반 모형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2020.02.24.)


2020/04/23

줄임말



친구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몇 년 만에 가요 프로그램을 본 것인지 모르겠다. 남자고 여자고 한 무더기씩 떼로 나와서 20년 전 일본 노래 같은 것을 불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아니고 보다가 채널을 돌렸는데, 보는 동안 죄다 모르는 가수들만 나왔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 중에 내가 아는 가수가 없다니. 1위 후보곡 세 곡 중 레드벨벳의 <사이코>와 지코의 <아무 노래>는 아는데 나머지 하나는 곡을 모르는 게 아니라 가수 자체를 몰랐다. 가수 이름이 ‘창모’였다. 내가 아는 구창모 뿐인데, 창모라는 가수가 1위 후보가 될 때까지 나는 그의 존재도 몰랐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가수든 아니든 그래도 누가 누구인지는 알았는데, 이제는 아는 가수가 많지 않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 몰라도 상관없고 10년 뒤에 몰라도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친구가 나보고 줄임말 같은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잘 모르지만 ‘갑분싸’ 같은 것은 안다, 배우 황정민처럼 “갑분싸가 갑자기 분뇨를 싸지른다의 줄임말 아니냐”고 묻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자만추’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자만추, 어디서 들어보기는 했는데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을 못하자 힌트로 용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무개 씨, 소개팅 하는 거 어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자만추예요.”

소개팅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는 자만추라고 한다니. 하나가 떠올랐다. 자기 만족하는 추한 남자? 확실히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생각나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한참 있다가 자만추가 무슨 말인지 기억났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내가 어디서 듣기는 들었던 것이다.

회사원인 친구는 줄임말의 틀린 사용에 대해 말했다. 어떤 임원이 사장하고 한참 싸우고 나온 다음에 자기가 사장한테 ‘열폭’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열폭?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나이 많은 임원은 열폭이 ‘열등감 폭발’이 아니라 ‘열 받아서 폭발’인 줄 알고 그랬던 것이다. 아마도 그 임원은 내 친구가 열폭의 원래 뜻을 가르쳐주기는 전까지 줄임말을 아무 상황에서나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다녔을 것이다. 결함 있는 전자제품을 판매한 대리점에 항의하러 다녀와 놓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방금 무슨 무슨 대리점에 가서 열폭하고 왔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 나이대 어른들이 줄임말을 그런 식으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분들이 어쩌다 새로운 말이나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배우면,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새로 배운 말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며 용법을 익힌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분들에게 그런 말을 가르쳐주는 분들도 그 말의 원래 뜻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원래의 줄임말은 그들만의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되어 그 분들의 의사소통에서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고 한다.

이상한 줄임말 같은 것을 쓰면 세종대왕이 슬퍼하니까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보고 이상한 말 쓰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말을 쓰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아니라 나이든 어른들일지도 모르겠다. 세종대왕이 슬퍼할까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엄마 늙었다고, 우리 아빠 늙었다고 주변 사람들이 슬퍼할까봐 그런 것이다.

(2020.02.23.)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