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6

[언어철학] Ayer (1946), Ch 1 “The Elimination of Metaphysics” 요약 정리 (미완성)

   
[ Alfred J. Ayer (1946), Language, Truth and Logic (Penguin Books), 2nd ed., pp. 45-61.
알프레드 J. 에이어, 『언어 논리 진리』, 송하석 옮김 (나남, 2010). 제1장. 「형이상학의 제거」 ]
   
   
■ 형이상학에 대한 에이어의 비판 [pp. 45-46, 53-54쪽]
- 철학자들의 전통적인 논의는 대부분 무익하고 확증되지 않았음.
• 이러한 논의를 끝내려면 철학적 탐구의 목적과 방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밝혀야 함.
- 형이상학적 논제는 철학이 과학과 상식의 세계를 초월한 실재(reality)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함.
• 형이상학적 진술들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식적 욕망이 아니라 논리적 실수를 범했기 때문에 생김.
- 형이상학자를 공격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형이상학자들이 제시하는 명제가 어떤 전제에서 연역되는지 질문하는 것.
- 가능한 반박
• 형이상학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감각적 증거에 근거하지 않음.
• 감각 경험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을 지적 직관을 통해 알 수 있음.
- 에이어의 처방
• 형이상학을 존재하게 된 방식을 비판하여 초월적 형이상학의 체계를 전복할 수 없음.
•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실제 진술들(actual statements)의 본질을 비판해야 함.
• 모든 가능한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재”를 지시하는 진술은 아무런 문자적 의미(literal significance)도 가질 수 없음.
• 형이상학적 실재를 기술하는 것은 무의미를 만들어낼 뿐.

■ 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 [pp. 46-48, 55-56쪽]
- 칸트는 초월적 형이상학을 비판했지만 또 다른 형이상학적 근거 위에서 이를 수행함.
• 인간 오성이란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물자체를 다루려고 시도할 때 모순에 빠지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
• 초월적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을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 우리의 정신은 현상적 세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
- 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
• 우리가 감각 경험의 한계 내에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면 한계를 넘어서 실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 그 한계를 넘어갈 수 없다면 인간 오성이 탐구할 수 없는 한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 에이어는 칸트에 대한 기존의 반론이 자신의 논제에 반론이 되지 않는다고 함.
• 가능한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무익하다는 것은 심리학적 가설(인간 마음의 현실적 구성)이 아니라 언어의 문자적 의미를 결정하는 규칙에서 연역됨.
• 형이상학자들의 문제는 탐구할 수 없는 영역에 오성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자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 한 문장이 사실에 관한 진짜 명제를 표현하는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기준을 정식화하기만 하면 됨.

■ 검증가능성 [pp. 48-50, 56-59쪽]
- 사실에 관한 분명한 진술이 진짜인지 아닌지 검토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의 기준. 
• 한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사실적으로(factually) 유의미하다 iff 그 사람이 그 문장이 표현하고자 하는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지 안다.
•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지 아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일정 조건에서 어떤 관찰이 그 명제를 참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거짓으로 거부하게 하는지를 안다는 것.
- 실천적 검증가능성(practical verifiability)과 원리상의 검증가능성(verifiability in principle)의 구분
• “달의 반대 편 표면에 산이 있다”는 명제는 현실적 관찰로는 참/거짓을 결정할 수 없지만 원리상 검증가능하므로 유의미한 명제
• “절대자의 진화는 진보에 관계하지만, 그 자체는 진화하거나 진보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원리상 검증가능하지 않음.
- ‘검증가능성’의 ‘강한’(strong) 의미와 ‘약한’(weak) 의미
• 어떤 명제가 강한 의미로 검증가능하다 iff 그 명제의 참이 경험에 의하여 확실하게 결정된다.
• 어떤 명제가 약한 의미로 검증가능하다 iff 그 명제의 참이 경험에 의하여 개연적으로 결정된다.

■ 검증가능성에 대한 다른 의견과 에이어의 비판 [pp. 50-52, 59-61쪽]
- 의견(1): 어떤 실증주의자들은 확정적 검증가능성(conclusive verifiability)을 주장함.
- 에이어: 확정적 검증가능성을 채택하면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게 됨.
• 예) “비소는 유독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등의 일반 명제
• 일반 명제는 유한한 관찰에 의하여 그 명제들의 참이 확실성을 가질 수 없음.
• 확정적 검증가능성을 채택하면 법칙에 관한 일반 명제를 형이상학의 진술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게 됨.
- 의견(2): 어떤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일반 명제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무의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의미한 것이라고 함.
- 에이어: “중요한”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도피처에 불과함. 역설적인 견해다.
• 이러한 문제는 먼 과거에 관한 명제에도 해당됨.
• 역사적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 진술의 참은 개연적인 것임.
- 의견(3): 한 문장이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반박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이 경우에만 그 문장이 사실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보자는 주장.
- 에이어: 어떤 가설을 참이라고 결정할 수 없지만 명백하게 반증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임.
• 어떤 관찰을 주어진 가설을 거짓으로 만드는 증거로 간주할 때 우리는 어떤 조건이 전제하므로, 가설은 확정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것처럼 결정적으로 반증될 수도 없다.
- 에이어의 결론: 더 약한 의미의 검증가능성.
• 사실에 관한 임의의 진술에 대해서 물을 때
“그 명제를 논리적으로 확실한 참이나 거짓으로 만들어주는 관찰이 있는가?”(X)
“그 명제의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데 관련이 있는 관찰이 있는가?”(O)

■ 검증 원리 [pp. 52-53, 61-62쪽]
- 경험 명제(experiential proposition): 현실적 관찰이든 가능적 관찰이든 하나의 관찰을 보고하는 명제
• 어떤 명제 P가 하나의 경험 명제나 유한한 수의 경험 명제와 동치는 아니고, 그 명제와 다른 전제들을 결합했을 때 어떤 경험 명제가 연역될 수 있지만 다른 전제들만으로는 그 경험 명제가 연연될 수 없을 때, 그 명제 P는 진정한 사실 명제(a genuine factual proposition)임.
* 주석(8): 이는 너무 단순한 진술이므로 서론 16쪽의 정식화를 볼 것.
- 이 기준은 충분히 관대하여, 일반 명제나 과거에 관한 명제의 의미를 부인하지 않음.

■ 검증 원리 기준이 배제하는 진술의 예 [pp. 53-55, 62-64쪽]
- 예(1): 감각 경험의 세계는 모두 비실재적(unreal)이라는 주장.
• 감각이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도 함.
• 그러나 감각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실수를 알려주는 것은 또 다른 감각 경험.
• 감각에 기초한 판단을 받아들이거나 반박하기 위해서 또 다시 감각에 의존함.
• 그러므로, 감각적 판단이 때로 실수라고 밝혀진다는 사실은 감각경험의 세계가 비-실재적임을 보여주지 않음.
- 예(2):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substance)의 수에 관한 논쟁
• 일원론자든 다원론자든 모두 논쟁의 해결과 관련되는 경험적 상황을 생각할 수 없음.
- 예(3): 실재론자와 관념론자 사이의 논쟁
• “실재적”이라는 말이 “관념적”이라는 말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그것이 실재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허구적임.

■ 형이상학의 진술은 무의미함 [pp. 55-56, 64-65쪽]
- 검증 원리가 주장하는 것
• 사실적 내용을 가지는 명제는 모두 경험적 가설.
• 경험적 가설의 기능은 경험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는 어떤 규칙을 제공하는 것.
• 모든 경험적 가설은 현실 경험이나 가능한 경험과 관련되어야 함.
• 따라서, 아무 경험과도 관련되지 않는 진술은 경험적 가설이 아니고 사실에 관한 내용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 형이상학자의 진술은 무의미함.
• 이는 형이상학자들의 언명(utterance)이 사실적 내용을 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험적 명제(a priori proposition)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도출됨.
• 형이상학적 문장은 진짜 명제를 표현하려고 하지만, 항진명제(tautology)도 아니고 경험적 가설도 표현하지 않음.

■ 형이상학적 주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pp. 56-59, 65-68쪽]
- 형이상학적 주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 우리는 사물 자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나 어구를 도입하지 않고 사물에 관한 것을 언급할 수 없음.
• 그 결과 모든 이름에 단 하나의 실재적 존재자가 대응한다는 근본 가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사물 자체와 감각될 수 있는 사물의 성질을 논리적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가정함.
• 사물 자체를 가리키기 위해 “실체”라는 용어를 사용함.
• 문법에 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형이상학이 생겨남.
- 예: ‘존재’(Being)라는 형이상학적 개념
• 존재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과 속성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의 문법 구조가 동일함.
• 가능한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대답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경향이 생김.
• 예) “순교자들이 있다”(Martyrs exist)와 “순교자들이 고통 받는다”(Martyrs suffer)가 문법적으로 동일해 보인다는 사실은 그 문장들의 논리적 형태가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함.
- 그러나 칸트가 지적했듯, 존재는 성질(attribute)이 아님.
• 존재가 성질이라면, 모든 긍정존재명제는 항진명제가 되고 모든 부정존재명제는 자기모순이 됨.
• 비-존재적 존재자가 실재한다는 가정은 문장의 문법적 주어가 될 수 있는 모든 단어나 어구는 어딘가에 그에 대응하는 실재적 존재자가 있다는 가정에서 생겨남.
• 예) “유니콘은 가상적이다”와 “개는 충직하다”는 문법적으로 같은 구조
• 예) 무(Nothing)에 대한 하이데거식의 진술
-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 중 많은 것이 형이상학이며 허구적이라는 견해는 철학자들의 심리에 관한 믿기 힘든 가정을 포함하는 것이 아님.

■ [pp. 59-61, 69-71쪽]
- 형이상학자를 일종의 시인이라고 하는 견해
• 형이상학의 진술은 문자적 의미를 가지지 않으므로 참/거짓에 관한 기준과 부합되지 않음.
• 그러한 진술들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일으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음.
• 그 결과 윤리적 기준이나 미학적 기준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음.
• 그러므로 도덕적 영감의 수단이나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짐.
- 에이어: 철학에서 추방당하는 형이상학자들은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 시인이 만드는 문장은 대부분 문자적 의미를 가짐.
• 예술 작품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명제가 문자적으로 거짓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빠지지 않음.
• 형이상학자들은 무의미를 의도하지 않음.
• 형이상학자들은 문법에 속거나 추론상의 잘못 때문에 감각세계는 비-실재적이라는 견해에 빠져 무의미한 문장을 만듦.
  
  
(2019.10.11.)
   

2019/09/25

일본 제품 불매운동 중 벌어진 김치 테러

   
간디의 물레가 아름다운 것은 조용하게 묵묵히 오랫동안 물레를 돌렸기 때문이다. 영국산 면직물을 찢고 불태우고 카레를 뿌렸다면 얼마나 추해보였을 것인가. 일본 제품 사용한다고 김치 테러를 하거나, 그런 테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이 얼마나 추한지 모르는 것 같다.
  
  
(2019.07.25.)
    

2019/09/24

벽을 눕혀도 다리가 안 된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고 한다. 참신한 개소리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 폐기물이 된다.
 
벽을 눕히면 하중을 못 견딘다. 벽돌담이 보기에는 튼튼해 보이지만 눕혀놓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벽이라고 해도 눕히면 하중을 못 견딘다. 잘 해봐야 징검다리 정도로나 쓸 수 있다. 벽과 다리는 설계부터 다르다. 벽을 눕혀서 다리로 쓸 수 있으면 미장일 하는 아저씨들 불러서 벽 만든 다음에 눕혀서 다리로 쓰지, 대학에 뭐 하러 토목공학과가 있겠는가.
    
  
(2019.07.24.)
    

2019/09/23

갈매기

   
갈매기들한테 과자를 주면서 보니까, 과자를 부리로 채갈 때 깔끔하게 채가는 갈매기들이 있는 반면, 유독 내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갈매기들이 있었다. 왜 그런가. 내 주변에서도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들어서면서 밥 먹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음식물이나 침을 흘려서 놀랐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마 갈매기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2019.07.23)
   

2019/09/22

[과학기술학] Oudshoorn (1999), “On Masculinities, Technologies, and Pain: The Testing of Male Contraceptives in the Clinic and the Media” 요약 정리 (미완성)

    
[ Nelly Oudshoorn, “On Masculinities, Technologies, and Pain: The Testing of Male Contraceptives in the Clinic and the Media,” STHV 24 (1999), 265-289. ]
  
  
  1. Testing in the Scientific Article
  2. Testing in the Press Bulletin
  3. Testing in the Mass Media
  4. Conclusions 
  
  
p. 265 #1
연구 동기
이 논문의 목적은 기술의 실행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 과학 전문가에게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

p. 266 #1
최근 15년 간의 동향

p. 266 #2
논문이 다룰 내용
기술을 시험하는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 문헌과 저널 문헌을 대칭적으로 분석
과학 매체(scientific press)와 대중 매체(popular press)가 성공적인 시험으로 여기는 게 현격히 다르다는 점을 보일 것

p. 268 #1
비교할 세 text
(1) WHO와 Fertility and Sterility에서 발행한 과학 보고서
(2) WHO에서 제공한 언론 보도문
(3) 이 실험을 다룬 네덜란드 신문의 보도

p. 268 #2
저자의 물음: “What is on trial where?”


  1. Testing in the Scientific Article

p. 268 #3
1970년대 이전, 피임 기술은 여성에 초점을 맞춤
그래서 1960년대 후반 남성 피임 기술은 다소 혁명적인 변화
WHO는 남성 피임 연구를 촉진하고 조정하는 주요 행위자
1970년대 초반 이후로 제약 산업은 피임 R&D에 투자하는 것에 주저함
WHO는 전통적인 제약 채널 외부에 대안적인 R&D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야 함
첫 번째 시도는 세계적인 실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두 번째 시도는 two large-scale clinical trials를 조직하는 것

p. 269
- WHO에서 과학 저널 형식으로 출판
- introductory text에 대한 분석
논문의 저자들은 이 기술의 유용성이 여전히 논증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으로 보임
WHO는 남성 피임 방법이 필요한 맥락을 구체화하지 않음
- 그리고 이 논문에서 보이는 것은
새로운 남성 피임 방법의 수용가능성에 관한 가능한 비판에 참여함

p. 270 #1
introductory text는 기술의 contested nature에 대한 명확한 지각을 보여줌
- 기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contest됨 
(1) 새로운 남성 피임법에 대한 필요
(2) trial(a weekly hormonal injection)에 대한 특정한 방법에 대한 수용가능성

p. 270 #2
본문을 보자
수용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그 논문에서 minor part에서만 다룰 뿐

p. 270 #3
저자들은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방법의 수용가능성을 평가할지 기술함
(1) 주사의 가능한 부작용을 모니터링
(2) 주사의 심리적 반작용을 모니터링(3) 참가자와 참가자의 파트너의 경험을 평가하기 위한 집단 토론을 조직하기
집단 토론의 결과는 네 줄로만 쓸 정도라고 생각한 듯함.
(...)
그러니까 수용가능성이나 부작용은 이 텍스트에서 중요한 주제가 아님

p. 271
discontinuations에 대한 장은 또한 남성이 피임의 책임을 나누어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함
새로운 남성 피임 방법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정교화와 방어를 포함함
문제는 30%는 정자가 0이 아니라 낮은 수준이었다는 점

p. 272 #1
질문: 정액 농도가 낮은 남성도 불임일 수 있는가?
답: 1밀리리터당 300만 마리 이하는 불임
따라서 호르몬 피임법의 시험은 불임의 재정의로 이어짐
시험 전에는, 0인 사람만 불임으로 생각되었으나, 시험 이후 개념이 바뀜


  2. Testing in the Press Bulletin

p. 273
1996년 4월 WHO는 news agencies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함
그러나 매체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데 성공하지 않음
이는 새 기술을 소개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이 많은 문화적인 작업을 해야 하며, 특히나 그 기술이 문화적으로 새롭다면 더더욱 그렇다는 점을 함축함.
1950년대 이후로, 여성용 피임은 13개, 남성용 피임은 400년 간 13개
Geoffrey Waites의 인용 – 여성용 피임이 된다면 남성용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는가.

p. 274 #1
WHO가 보도 자료(press bulletin)를 매체에 내놓기로 결정한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음
WHO가 대중에 전달하고자 한 뉴스는 무엇이었는가?
과학 공동체와 의사소통한 것과 대중에 전달한 것은 어느 범위에서 달랐는가?
보도 자료의 제목: “WHO Completes International Trial of a Hormonal Contraceptive for Men”
보도 자료는 과학 공동체에서와 완전히 다른 전략과 어조로 말함
the results of the trial은 “새로운 남성 피임법의 돌파구”라고 함
Fertility and Sterility에서는 새로운 남성 피임법과 다른 prototype을 시험한 것뿐이라고 함.

p. 275 #1
보도 자료에서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새로운 남성 피임의 필요성
보도 자료의 3번째 문단
이것은 WHO에서 과학자 공동체에 한 것과 비슷
두 텍스트 모두 남자를 피임의 책임을 파트너와 나누려고 하는 남자로 표현함

p. 275 #2
첫 세 문단은 피임법의 delivery system을 언급하지 않음
결론 문단에서 WHO는 “남성 피임은 주사로 이루어지고 이는 결점”이지만 이러한 제한은 쉽게 해결가능하다고 함
WHO는 3-4개월 단위 주사를 개발중이라고 씀

p. 276 #1
그러므로 보도 자료는 새로운 남성 피임법의 돌파구에 대한 낙관적인 이야기
Fertility and Sterility에 실린 가능한 건강 위험, 심리적 영향, 문화적 수용가능성 등은 보도 자료에 안 실림
이는 텍스트의 독자와 관련됨
보도 자료는 대중을 설득하는 기능도 있음
새로운 남성 피임법에 대중들이 설득되어야 하고, 다른 중요한 행위자인 제약 산업도 설득되어야 함.
제약 회사는 여전히 투자하는 데 주저했음


  3. Testing in the Mass Media

p. 276 #2
매체는 어느 정도로 새 기술이 기술적, 문화적 실행가능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는가?
신문 기사의 내용은 단순히 보도 자료의 낙관적인 이야기를 재생산 하는 것이 아님

p. 276 #3
WHO 보도 자료는 효과적이라고 하고 남성이 피임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반면, 뉴스 매체들은 부작용과 고통이 중심 소재, 남자는 희생자로 묘사
즉, 부정적으로 묘사

p. 277 #1
매체에서 시험과 클리닉에서 시험을 비교하면 
새로운 남성 피임법 시험에 사용된 기준의 차이가 드러남
클리닉은 효율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재정의
언론은 새로운 기술의 수용가능성
여성이 새로운 방법의 지지자인 것으로 나옴. 왜냐하면 남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

p. 277 #2
언론은 남성 피임법이 여성용 경구 피임약처럼 쓰일 수 있다면서 “How reliable are men?”이라고 함
여성들이 이 기술을 절대로 안 받아들일 것이라는 결과를 인용함
네덜란드 남자의 대부분이 절대로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함.
여기서 기준은 믿음이 아니라 고통
WHO 보도 자료와 달리, 언론은 궁둥이 통증을 강조함
남자들이 주사 맞으러 일주일에 한 시간씩 일을 안 할 것이라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음.

p. 279 #1
네덜란드 언론들은 믿을 수 없고 너무 민감한 남자들을 보여줌
이러한 이미지를 구성함으로써, 동시에 언론들은 남성성의 헤게모니적이고 문화적인 표상들을 재생산하고 경합시킴
이러한 이미지는 피임에서 남성의 역할을 여성에게 전가함
남성을 고통에 너무 민감하게 표상함으로써, 남성보다 여성이 성에 예민하고 취약하가는 hegemonic feminine representations을 통합함(?)

p. 279 #2
또한 두 신문에서 남성성의 주된 표상을 추가함
네덜란드 국가대표 미식축구팀과 물리학자
이들은 주사가 문제가 안 된다고 함
언론은 새로운 남성 정체성을 정교화함
너무 많이 낳는 것을 통제하기를 원하는 남성
성적으로 매력 있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공고하게 함

p. 279 #3
적어도 네덜란드에서는 새로운 남성 피임법의 문화적 실행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는 결론


  4. Conclusions 

p. 280 #1
이 논문은 기술의 실행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 과학 전문가에게만 달려있지 않다고 논증함.
뉴스 매체도 실행가능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자
시험 장소로서 과학 매체와 대중 매체의 차이점을 보여줌
(1) 주체, 목적, 기준, 전문가가 다름
과학 텍스트와 press bulletin에서, 인공물과 trial participants가 on trial
뉴스 매체에서는 잠재적 사용자, 특히나 잠재적 사용자의 파트너
시험의 목적: 기술의 기술적 시험가능성, 즉 피임 기준의 재정의 / 새 기술의 문화적 실행가능성, 즉 주사하는 것을 수용가능한지 

p. 280 #2
(2) 과학적 텍스트와 언론 텍스트는 기술의 기술적 문화적 실행가능성에 완전히 다른 설명

p. 281 #1
(3) 두 텍스트는 잠재적 사용자에 대한 완전히 다른 표상

p. 281 #2
남성 피임 기술에 대한 이들 다른 설명은, 성공한 시험으로서 간주되는 것이 과학자나 과학 저널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줌.
뉴스 매체에서 실험 결과를 복제하고 경합시킴으로써 뉴스 매체도 과학적 주장을 형성할 수 있음.
과학자들이 과학적 주장을 수용이나 거부하는 실험의 복제에 의존하는 반면,
언론인들은 .....
남성 피임 기술의 시험의 경우, 매체는 실험 결과를 복제하는 것을 거부함.
WHO가 언론 보도문을 언론에 광범위하게 뿌렸으나, 네덜란드 신문은 새 기술의 대안적 실험을 제공함으로써 WHO의 과학적 권위를 경쟁시킴
이는 이례적인 사례. 왜냐하면 신문은 과학자들이 언론사에 말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많이 하므로.

p. 281 #3
그러므로 질문은, 왜 언론인들은 이러한 journalistic routine에서 벗어났냐는 것
어떻게 네덜란드 언론인들은 WHO와 경합할 수 있었느냐는 것
reproductive sciences가 top 10 안에 못 들어도, 그렇게 낮은 건 아님
WHO가 시험하는 과학적 주장이 모두 매체의 비판에 취약한 것도 아님
언론인들은 남성 피임 주사의 문화적 실행가능성(cultural feasibility)에만 경쟁하게 함.
피임법의 기술적 실행가능성은 문제 대상도 아님.
- 아우츠혼의 대답
: 남성 피임 기술에 대한 시험의 뉴스 보도는 피임 기술의 유망성에 의문을 제시했던 교육을 받은 매체의 이전 비판에 기인함.
1960년 초반 여성에 대한 경구 피임약이 소개된 이후에도, 여성 건강 운동은 여성 피임의 건강상 위험에 대해 언론과 대중에게 알림
남성 피임은 이와 다름
남성 피임의 경우, 비판의 목소리는 여성 건강 옹호자보다 매체에서 더 크게 나옴
여성 피임 방법에 대한 비판은 부분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제도적 힘의 상징으로서 건강과 임신 통제에 초점, 남성 피임 방법에 대한 비판은 젠더 역할과 정체성의 양립불가능성에 초점
이 사례 연구는 젠더에 대한 주도적인 표상을 깨는 과학적 주장은 매체의 파괴에 취약하다는 것을 제시함.
“이야기, 역사, 신화, 자서전, 소설 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 옳고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지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됨”
돌보는 남성(caring man)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부합하지 않음
  
  
(2019.11.15.)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