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이화여대 근처에 있는 <가야가야>라는 라면집에서 일본 라면을 먹는다. <가야가야>라는 집을 알게 된 것은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을 통해서였다. 백종원이 방송에서 해당 라면집을 극찬했다는 것을 <근황올림픽>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 후 언제 기회가 되면 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라면 하나 먹으러 이화여대까지 가기에 거리가 멀어서 안 가다가, 이번 학기에 이화여대에서 청강하는 대학원 수업이 하나 있어서 청강하러 갈 때마다 점심 때 <가야가야>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
일본 라면을 먹으면서 문득 일곱 살 때 유치원에서 들었던 동화가 기억났다. 일본 라면을 먹기 시작한 게 몇 년 전인데 신기하게 <가야가야>에서 라면을 먹었을 때 그 동화가 기억났다. 어렸을 때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거의 30년 만에 떠오른 것이다. 동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라면집이 있었다. 라면이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와서 라면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끼가 와서 라면을 시키더니 한 입만 먹고 가게 문을 나가는 것이었다. 가게 주인은 이상해서 토끼가 남긴 라면을 먹어보았다. 라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 다음 날에도 토끼가 와서 라면을 한 입만 먹고 가게를 나갔다. 한참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라면 가게 주인이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데 한 구석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파는 것을 보고 라면 가게 주인은 라면 맛이 궁금해서 한 그릇 사 먹었다. 놀랍게도 자기가 만든 라면과 똑같은 맛이었다. 포장마차의 주인은 라면 가게에서 한 입만 먹고 나가던 토끼였다. 배부르게 먹으면 라면의 맛을 기억하지 못해서 한 입만 먹고 가게를 나갔던 것이었다.
30년 전 일곱 살이었던 나로서는 아마 동화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라면이 거기서 거기지 특별히 맛있는 라면집이 있다는 게 무엇이며, 라면 맛이 왜 포장은 안 되는 것일까? 거기에 대해 선생님이 명확한 부연설명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동화에 나오는 라면은 진라면이나 신라면이 아니라 일본 라면이었을 것인데, 그 때는 일본 라면집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어서 유치원 선생님도 그게 일본 라면인 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해당 동화는 일본 동화를 번역한 것이었을 텐데 당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대망』이라고 해서 해적판이 돌던 때라 유치원 선생님도 그게 일본 동화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202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