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후배가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하여 일요일 점심에 모여 식사했다. 낙지전골을 먹으면서 술 한 잔을 했고, 다시 맥주집에 가서 또 한 잔을 했다. 그렇게 술을 마셨으면 좋게 기숙사로 가야 했는데, 괜히 연구실에 가고 싶었다. 집에 일이 있고 하면서 연구실에 자주 못 가게 된 지 꽤 되었고, 일요일이니까 연구실에 사람이 없을 것이고, 또 혼자 연구실에 있으면 오묘한 기분이 들 것 같고, 하여간 연구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취했던 것이다.
그렇게 굳이 연구실에 갔더니 박사과정생 한 명과 석사과정생 한 명이 있었다. 두 명이 더 있었다고 했는데 어디 가더니 안 돌아온다고 했다. 내가 잘못 간 것이었다. 그 때라도 기숙사로 가야겠지만 이왕 간 것이니 조금 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노트북을 켜서 글쓰기 조교 업무를 하려고 했는데, 글이 눈에 안 들어왔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취했었다. 애초에 맨정신에도 글쓰기 과제 글이 눈에 안 들어왔는데 술을 먹으니 더더욱 눈에 안 들어왔다. 내가 이 정도로 술을 먹었다면 분명히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알코올을 뿜을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나와서 공동공간으로 갔다. 작업을 마저 하려고 했으나, 당연히 조교 업무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오기로 앉아 있다가, 결국 기숙사로 가려고 연구실을 나왔다.
기숙사로 가는 버스를 타러 정문까지 걸어가는데 차선 맞은 편에 있는 인도에서 이상한 점박이 무늬 옷을 입은 놈이 본 조비의 “Always”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걸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노래 한 곡을 다 듣게 되었다. 속으로 ‘미친 놈, 더럽게 못 부르네’ 하고 생각하다가, ‘뭐야, 내 또래인가? 저 노래를 왜 알지?’ 싶다가, 계속 듣다보니 ‘못 부르는 주제에 왜 저렇게 애절하게 부르지?’ 싶다가, 하마터면 따라 부를 뻔했다. 정신을 안 놓아서 따라부르지는 않았는데, 사실 가사를 정확히 몰라서 정신을 놓았다고 해도 따라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친 놈이 왜 길거리에서 저렇게 노래를 부르지?’ 싶으면서도 이미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나도 “Always”를 가사도 모르면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취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버스에서 자다가 술이 약간 깼는데, 술은 약간 깼지만 덜 깨서 그런지 노래방은 가야할 것 같았다. 기숙사에 짐을 두고 가사도 모르는 “Always”를 흥얼거리면서 노래방 쪽으로 가다가, 술을 먹었으면 아이스크림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월드콘 하나 사 먹으려고 기숙사 건물 1층의 편의점 쪽으로 향하다가, 길 건너편의 <ㅇㅇㅅㅋㄹ>가 더 싸니까 거기 가서 사려고 길을 건너려다가,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이라서 잠깐 멈추어 섰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 다른 횡단보도에서 온 동료 대학원생 ㄱ이 손을 흔들었고 그 옆에 ㅎ 선생님이 김창완 같은 따뜻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냈다. “아, ◯◯◯씨도 맥주 마시려고 나온 거죠?” 그런 게 아니었지만 나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고 선생님을 따라가서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선생님과 동료 대학원생도 맥주를 마시기로 약속하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술 먹고 연구실에 도착하기 전에 연구실에서 나왔던 동료 대학원생은 기숙사로 향하다가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우연히 나를 만나서, 그렇게 셋이 모였던 것이다.
내가 만일 술을 먹고 굳이 연구실을 가지 않았다면, 미친 놈이 길거리에서 본 조비의 “Always”를 부르지 않았다면, 아이스크림을 <ㅇㅇㅅㅋㄹ>가 아니라 가까운 편의점에서 사먹었다면, 이 중 단 하나만 실행했다면, 나는 동료 대학원생 ㄱ과 ㅎ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그렇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다고 할 때, 그 사람이 그 때 거기에 있었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 사람이 그 때 거기에 있었다고 해도 내가 그 때 거기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났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만났던 것이다.
(202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