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집에서 잡다한 일을 점점 많이 하게 된다. 내가 대학원생인지 자연인인지 모르겠다.
구찌뽕 나무 근처에 있는 잡목을 정리하다가 향나무 가지치기를 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는 오래된 향나무인데, 누가 심었는지, 왜 심었는지도 모른다. 남의 집에 있는 나무면 내가 손을 안 댈 텐데 경계선에 어중간하게 있는 나무라서 결국 내가 손을 댔다. 가지치기를 하고 어머니한테 보여드렸더니 “이제 나무 꼴이 됐네”라고 하셨다. 그 전에는 잔가지가 많아 밤송이처럼 보였다.
창고에서 못 쓰는 각목을 정리했다. 각목이 멀쩡한 상태로 있으면 정리하기 편할 텐데 비닐하우스 같은 데 쓰려고 했던 것인지 못으로 여러 각목을 붙여놓거나 긴 각목에 토막 난 각목을 붙여놓은 것이 창고에 가득 있었다. 도끼로 각목을 쳐서 긴 각목에 붙은 토막 난 각목을 떼어내고 부스러기만 불에 태웠는데도, 하도 많아서 하루종일 태웠다. 나중에 가래를 뱉었더니 검은 가래가 나왔다. 그제서야 공업용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 하고도 전체 각목 중 3분의 1밖에 정리하지 못했다. 아마 캠프파이어를 두세 번쯤 할 수 있는 양일 것이다.
경계석도 옮겼다. 원래는 아버지가 심은 것이었는데 측량을 해보니 아버지가 경계석을 잘못 심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1미터 정도 옮겨서 다시 심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포크레인으로 경계석을 심었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삽으로 파서 옮겨 심었다. 내가 삽으로 땅을 파고 있으니까 지나가던 할머니가 나보고 “포크레인으로 하지 왜 삽으로 파느냐?”고 물었다. 나는 삽으로 파서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 삽으로 팠는데 할머니가 보기에는 포크레인으로 할 일로 보였나 보다.
나는 경계석을 옮기는 김에 위아래를 바꾸어서 심으려고 했다. 경계석 위쪽에는 흠집이 약간 있으니 경계석의 위아래를 바꾸면 흠집이 없는 경계석 아래쪽이 위로 올라올 것이었다. 돌이 꽤나 무거워서 번쩍 들어올릴 수는 없었지만 돌을 눕히거나 한쪽을 들어올리는 것은 가능했다. 그래서 땅을 적당히 파고는 돌을 눕혔다 굴렸다 엎었다 다시 들었다를 반복해서 돌의 위아래를 바꾸어 심었다.
나는 경계석 옮긴 사진을 동료 대학원생에게 보여주고 어떻게 일을 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동료 대학원생은 고인돌을 옮기는 것처럼 통나무를 밑에 깔고 옮겼을 것 같다고 답했다. 동료 대학원생의 말을 듣고 어렸을 때 학습 만화 같은 데서 보았던 그림이 떠올랐다. 고인돌을 만들 때 밑에 통나무를 깔고 굴려서 고인돌의 윗돌을 옮겼을 것이라는 그림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 어렸을 때는 모르니까 학습 만화를 보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가 집에서 일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돌을 옮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선, 통나무를 일정한 크기의 원기둥 형태로 깎아야 하고, 그렇게 만든 통나무가 돌의 하중을 견뎌야 하고, 통나무가 굴러가도록 바닥이 평평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하다 못해 시골에서 일할 때는 바닥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외발수레로 일하는 것보다 두발수레로 일하는 것이 훨씬 힘든데, 두발수레도 아니고 통나무를 굴려서 바위를 옮길 수 있을까?
연구실 근처를 지나가던 사학과 출신 대학원생한테 혹시 고인돌 제작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대학원생은 사학과에서 그런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거의 고고학 쪽에서 하기 때문에 배운 적이 없다고 답했다. 고고학 전공자 중에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RISS에 검색했는데 고인돌 제작 방식에 관한 한국어 논문을 찾지 못했다. 하여간 통나무를 굴려서 바위를 옮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나중에 고고학 하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아야겠다.
(202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