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서두에서 독자에게 친숙한 소재를 언급하라고 하는 글쓰기 책이나 글쓰기 강의가 있는 모양이다. 독자들은 글의 서두를 읽고 글을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니 독자에게 친숙한 소재를 서두에 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서두를 쓰는 것이 어떻게든 튀어 보이려고 뜬금없는 미친 소리로 글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친숙한 소재가 글 서두에 보인다고 해서 그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가? 그렇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글 쓰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지침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 책이나 강의에서는 왜 그렇게 가르치는가? 아마도 해당 저자나 강의자는 별 생각 없이 글을 그런 방식으로 써왔거나, 글의 서두에서 친숙한 소재를 언급하기만 해도 반가운 마음에 아무 글이나 읽을 정도로 안목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글쓰기 책이나 강의를 골랐는데 글쓰기 지침이랍시고 그런 것을 가르치면 빨리 환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명문이든 논설문이든 어떤 형태의 글이든, 글에는 분량 제한이 있다. 자기 혼자 읽으려고 쓰는 글도 분량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 내용 없이 길기만 한 글이나 읽으면서 실없이 좋아하는 멍청이들이나 읽으라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일정 분량 안에 들어갈 정보량을 계산하거나 일정한 정보량을 담을 분량을 계산해야 한다. 글의 내용과 밀접하지도 않은데도 단순히 독자들보고 친근함을 느끼라고 글의 서두에 그런 것을 쓸 정도라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거의 모르는 상태이거나, 글을 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글의 분량을 늘리는 중인 것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글이 나올 수 없다.
이를 응용하면, 당시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는 칼럼 치고 내용이 멀쩡한 칼럼이 드물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비평하는 칼럼이라면 모를까, 사회 문제를 비평하는 칼럼에서 굳이 영화나 드라마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알고 있었고 오래 지속되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해보자. 이미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모두가 사회 문제로 인지하는데 왜 굳이 해당 영화나 드라마를 언급해야 하는가?
교육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 교육문제는 몇 십 년 동안 내내 문제였고 누구나 얽히게 되는 문제였다. 그러니 굳이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당대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교육이나 입시가 문제라면 어떤 점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지, 어떤 해결책이 가능한지 등을 건조하게 쓰면 된다. 문제는 복잡하고 칼럼 분량은 적기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 필요한 내용을 다 담기 힘들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스카이캐슬>의 인기 같은 소리를 칼럼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가뜩이나 지면도 부족한데 <스카이캐슬>의 인기나 어떠니, 무슨 내용이니, 거기에 누가 나오니, 사람들이 공감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칼럼에 쓰면 그만큼 필요한 내용을 못 쓰게 된다. 그렇다고 <스카이캐슬>과 관련된 내용이 글에 밀접한 것도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교육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도 쓸 필요가 없다. 언제는 한국 사람들이 교육문제가 심각한 줄 몰랐나? 그냥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고만 해도 충분하다. 심지어, 입시문제를 다룬 작품이 화제가 된 것도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은 아니잖아요>(198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경우는, 멀쩡한 글을 쓸 것이었는데 <스카이캐슬> 같은 소리나 해서 글을 제대로 못 쓴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멀쩡한 글을 쓸 상황이 안 되었기 때문에 <스카이캐슬> 같은 소리로 글을 시작했다고 추측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애초에 교육문제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그딴 식으로 글을 썼을 리 없다. 칼럼을 쓰기는 써야 하는데 마땅히 쓸 것도 없고 사람들마다 <스카이캐슬>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스카이캐슬>을 언급하기는 해야겠다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거나, 필자가 <스카이캐슬>을 보고 꽂혀서 칼럼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교육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드라마로 대충 분량을 채우고는 아무 말이나 덧붙이는 방식으로 칼럼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오징어게임>이다. 한동안 <오징어게임>으로 서두를 시작하는 칼럼들을 지겹도록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쟁만 들어가면 죄다 <오징어게임> 같은 소리로 서두를 시작할 것이다. 부동산도 <오징어게임>, 교육도 <오징어게임>, 취업도 <오징어게임>, 다 <오징어게임>일 것이다. 신문 칼럼란에 또 어떤 난장판이 벌어지는지 만끽하도록 하자.
(2021.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