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er Pesic (2014), Music and the Making of Modern Science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
메르센은 데카르트가 새로운 자연 철학이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예수회 학교를 다녔으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수도원에서 지낸 메르센은 창세기에 대한 논평을 한 <Quaestiones in Genesim>(1623)에서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초기에는 지구중심설에 호의적이었으나 우주의 조화에 대한 자료를 모르면서 메르셀은 점점 코페르니쿠스의 입장에 가까워진다.
플라톤식 설명을 수용하면서 메르센은 천상의 음악의 청각적 실재를 믿기 시작했다. 메르센은 자신의 견해를 케플러와 지구중심적 전통주의자 로버트 플러드의 논쟁하고 브라헤가 가장 정화한 관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표현했고, 행성 관측을 화음과 불협화음으로 표현했다. 그 책에서 메르센은 지구의 운동을 주장하는 것을 삼갔지만 케플러의 구체적인 조화들에 동의했다. 메르센이 보기에 케플러의 견해는 관측 사실과 일치하고 프톨레마이오스가 결여한 음악적 기원(musical provenance)을 가지기 때문이다. 메르센은 케플러가 케플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찾지는 못했고 우리는 여전히 행성들의 거리와 운동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케플러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메르센은 케플러가 태양에 대한 찬송을 이교도이자 신-플라톤의 철학자 프로클로스에게 바치는 것이 Titan이나 Sun의 이름 아래 신의 아들에 대한 찬양으로 읽힐 수 있다고 보았다. 만일 그렇다면, 태양중심적 견해는 기독교와 동일하고 신-플라톤주의적 현자는 기독교적 원인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우주적 조화에 대한 메르센의 열정은 갈릴레오가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코페르니쿠스를 옹호하게 했고 또한 조화 개념은 과학과 공학의 영역에 걸쳐 확장되기도 했다. 메르센이 <Harmonie Universelle>(1636-37)을 집필하는 동안 갈릴레오의 작업이 막 프랑스에 알려졌다. 이 책에서 메르센은 자연 철학에서 음악이 중심에 있음을 주장했다. 음악은 메르센이 하는 발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운동에 대한 새로운 갈릴레오식 이론과 관련하여 메르센은 음악에 대한 백과전서적인 작업을 했다. 메르센은 자신이 태양중심적 견해를 고수한다는 점을 숨기거나 다른 입장을 가진 것처럼 위장하지 않았으나 책에 천문학이나 우주론과 관련하여 논쟁일 될 만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음악과 근본적인 물리학을 연결되는 필연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메르센은 독자들이 그럴듯한 추론이나 공허한 말보다는 피사의 낙하 실험 같은 정교한 실험을 통해 사실을 마주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실험에 의한 실증적인 증명을 주장하면서 메르센은 실험적 지식의 직접적인 근원으로서 음악과 관련된 기술 용어(technical terms) 사용을 옹호했다.
메르센은 소리와 빛에 관한 탐구가 각자 서로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도우므로 소리에 대한 연구는 자연을 이해하는 왕도라고 강조했다. 1628-29년 네덜란드에서 데카르트와 베크만을 만나기 전에도 메르센은 소리처럼 빛도 순수하게 물질적인 현상이라고 보았다.
메르센의 견해는 갈릴레오의 변형 정도로 보일 수 있으나, 메르센은 갈릴레오 전에 특정한 직관에 잘 도달했다. 메르센은 관찰로부터 현의 진동수와 현의 장력의 제곱근 사이의 경험적 비례가 따라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여러 실험에서 오늘날 “메르센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했다 갈릴레오가 그러했듯, 메르센은 경험적인 법칙으로부터 현이 초당 84 cycles만큼 진동한다고 연역적으로 도출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눈으로 셀 수 없었을 것이었다. 메르센의 실험 기술은 더 이상 청각적으로 식별할 수 없는 진동수의 영역을 탐구하는 그 순간에 귀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메르센은 이러한 실험과 관찰을 계속하여 8음계 음들에 대한 진동수를 표로 만들었는데,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현의 길이와 크기를 안다면 현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다”면서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위한 화음표를 만들었다. 1638년에 데카르트가 스스로 “거의 귀가 안 들린다”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메르센의 화음표는 아마도 데카르트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메르센의 탐구 계획의 또 다른 특징은 실용적 음악의 고려와 이론적 탐구를 혼합한다는 점이다. 소리의 진동수와 그 법칙을 측정하기 위해 현악기를 사용한 메르센은 “누군가 악보를 어디로 가져가도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또한 박자는 보편적인 단위(맥박 등)에 따라 구체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음악적 시간에 관한 쟁점도 시계 자체에 대한 메르센의 재고찰과 관련된다. 갈릴리오보다 1년 전에 메르센은 진자 주기가 진자 길이의 제곱근에 역비례한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이것이 시계제작자가 시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에 주목했다. 낙하체의 역학, 빗면, 추에 대한 메르센의 구체적인 조치는 진동체에 대한 연역을 가능하게 하고 데카르트의 직관을 가능하게 했다. 데카르트의 직관은 진동하는 현을 추의 조화(ensemble)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 디어가 말하듯 “메르센은 음악의 기계화를 통하여 기계의 조화를 달성했다.”
메르센은 음악적 관찰에서 물리 이론으로 한 방향으로만 연역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속성에 대한 탐구에 바탕해서 음악적 응용을 하기도 했다. 메르센은 낙하체가 만드는 다양한 음을 연구했으며, 낙하체가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 음이 다른 것을 표로도 만들었다. 이 표를 통해 메르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갈릴레이에게 넘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빠른 운동이 더 높은 음을 만든다고 했는데, 메르센은 두 낙하체가 도달할 속도를 추정하고 낙하체의 속도의 비는 최종 속도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음악적 비율을 표상했다. 이때 메르센은 공기 저항 등의 요소를 보정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연역의 패턴은 케플러가 행성들의 조화로운 관계를 평가할 때 사용한 것에 가깝고 그러한 의미에서 메르센은 천상에 관하여 배운 것을 지구에 대한 것에 응용한 셈이다.
(2019.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