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출판부에서 40주년 기념으로 기획도서 공모전을 한다고 한다. 설립 40주년이라니 축하할 일이지만 공모전 내용을 보니 영 탐탁하지 않다.
성균관대 출판부는 이번 기획의 목표를 “한국 사회의 차이와 대립이 새로운 문화의 융화로 변신하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라고 밝히며, “새로운 문화의 융화로”라는 모토 아래 “이항 대립적 주제들을 자유롭게 상정하여 집필하라”고 한다. “문화의 대립항”이라는 것의 예시로 제시한 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억과 망각, 빈과 부, 생명과 파괴, 성과 속, 중심과 주변, 보수와 진보, 토대와 경계, 자연과 인위, 창조와 모방, 미와 추” 같은 것들이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마음 놓고 거대하고 허황된 이야기를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부에서 밝힌 기타 사항을 보면 우려는 더 커진다. 출판부는 “주제 선택의 분야는 제한을 두지 않지만, 지나치게 전문적인 원고, 교재 등을 위한 원고는 제외”하며 “보다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대중교양서 성격의 원고를 우대”한다고 밝힌다. 대학 출판사가 전문적인 원고를 안 받으면 어디에서 받는다는 것인가? 대학 출판부의 역할 중 하나는, 학술적 가치가 있지만 상업성이 부족하여 시중의 출판사에서 출판하지 않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대중교양서”는 시중의 출판사에서 출판하면 된다. 대학 출판사에서 한정된 예산을 왜 굳이 그런 데 쓰는가. 학교에서 예산을 안 주니까 이번 참에 책 좀 팔아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것인가? 이것만 봐도 성균관대 출판부가 대학 출판부의 기능이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번 공모전에서 성균관대 출판부는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대중교양서”조차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잘 팔릴 대중교양서를 쓴 사람이 민음사나 김영사에서 출판하겠는가,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하겠는가? 나 같으면 민음사나 김영사에서 출판하겠다. 성균관대 출판부가 그런 출판사들만큼 홍보를 할 수 있는가, 영업을 할 수 있는가, 행사를 할 수 있는가? 결국 40주년 기념 기획도서 공모전의 결과물로 성균관대 출판부가 출판할 책은 학술적이지도 않으면서 팔리지도 않을 책이 될 것이다.
누가 보아도 실패할 계획을 세워놓고는 성균관대 출판부는 자기네가 하는 것이 “창의적인 기획도서 원고 공모전”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이기는 쥐뿔이나 뭐가 창의적인가. 대학 출판부라면 우수 학술서적이나 우수 번역서적을 출판하는 기본에 충실한 공모전을 했어야 했다.
* 링크: 성균관대 출판부 40주년 기념 기획도서 원고공모
( http://press.skku.edu/manuscript/40th.do )
(201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