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기종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2012년, 서울지방법원에서였다.
일이 생겨서 나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법원에 갔었다. 그때 김기종씨는 우리한테 접근해서 이런 저런 말을 했다. 딱 봐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눈짓을 하며 빨리 가자고 하셨지만, 나는 어머니와 동생을 먼저 보내고 그와 대화를 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기는 했지만, 법원은 안전한 곳이라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다.
그는 대뜸 나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물었다. 내가 출신 학교를 대답하자 그는 후배라면서 반가워했다. 자신은 법대 나왔다면서 주진우 기자도 동문이라고 했다. 주진우 기자가 그 분과 친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 분은 그런 사람들과 동문임을 강조했다. 나는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정말 법대 나온 거 맞나 의심했는데, 이야기 하는 중간 중간에 그는 지나가는 법조인들과 형 동생 하며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아는 분이냐고 물으니 대학 후배라고 했다.
그는 나와 대화하는 내내 자신이 “매우 대단한 사람”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자신이 한 일이 매우 많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단소 가르친 것도 자신이 한 일이며, 하여간 이것저것 해놓은 게 굉장히 많다고 했었다.
나는 그 분에게 그러한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나는 뭔가 유형화된 대답(1980년대 학생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보니 경상도 사람보고는 경상도 사람이라고 하고 충청도 사람보고는 충청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전라도 사람만은 꼭 전라도 놈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하다가 선배들이나 다른 동료들과 같이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다 그러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리하면 간단한 이야기인데 그 당시는 이 내용을 굉장히 길고 두서없이 말했었다. 듣는 내내 이해가 안 갔다.
그는 그날 처음 본 나에게, 자신은 “연애 경험도 없고 성 경험도 없는 병신이다. 병신이라서 어쩔 수 없다. 늙은 어머니와 둘이서 산다. 나는 내가 병신인 걸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을 보여주었다. 화상으로 변형된 손이었다. 청와대에서 분신시도 하면서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인화물질을 가지고 청와대에 들어갈 수 없어서 시너를 적신 팬티를 입고 청와대에 들어가 불을 붙였다고 했다. 런닝셔츠나 복대 등에 적당히 시너를 묻힐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팬티에 시너를 적셔야 했나 싶었다.
그날도 그는 개량한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잇몸과 이가 맞지 않는 걸 보니 틀니인 것 같았고 그것도 꽤 오래된 틀니 같았다. 발음이 불명확하고 말이 어눌했다. 그때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헤어지며 “독도지킴이 김기종”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받았다. 심심하면 사무실 놀러오라고 하는 말에 나는 그러겠다고 하고 가지 않았다. 법원 밖을 나가면서도 그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한테 법원에서 대단한 선배 만났다고 자랑하라”고 말했다.
몇 년 지나서 그를 다시 본 건 김귀정 열사 추모제에서였다. 그 분은 거기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학생운동 했던 분들과 형 동생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문과대 학생회 집행부를 붙들고 무언가 이야기를 했고(나는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내용은 모른다) 그 집행부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를 모른 척 했고 그 분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또 몇 년이 지난 오늘, 그는 주한 미국 대사를 테러한 테러범으로 뉴스에 나오고 있다. 저게 튜링 테스트 하는 건가 싶은 말만 하는 박근혜는 이번 테러를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며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고, 검찰은 배후가 있는지, 북한과 연계되지 않았는지 강도 높게 수사하겠다고 했다.
어제까지도 나는 김기종씨가 어쩌다 그렇게 안 좋은 상태가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딱하다, 안 됐다’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오늘 인터넷에서 어떤 자료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1988년에 “우리마당 사건”이라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김기종씨는 <우리마당>이라고 하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1988년 8월에 괴한 네 명이 사무실에 침입해 못을 박은 각목으로 자고 있던 대학생을 구타하고 여성회원을 성폭행 한 뒤 달아났다고 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사건인데 경찰은 단순 강도 사건으로 몰았고, 제보가 나와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게 빠진 퍼즐 한 조각이었다.
김기종씨는 2007년에 진실규명을 외치며 청와대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나는 그가 다른 정권도 아닌 노무현 정권 때 왜 청와대에서 분신을 시도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법원에서 그에게 분신을 시도한 이유를 물었을 때도 그는 그런 일이 있다고만 했지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나는 그동안 그가 미친 사람이라 앞뒤 못 가리고 그런 줄만 알았다.
그의 테러는 한낱 정신이상자의 테러에 불과하다. 한국인의 반미정서와도 무관하고 북한과도 무관해 보인다. 몇 년 전에 만났던 김기종씨는 이미 누군가의 통제나 지시를 받지도 못할 정도로 상당히 안 좋은 상태였다. 뉴스 화면으로 보니 지금 그는 그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것 같다. 미국 정부도 그의 테러를 “분별없는 폭력 행위(senseless acts of violence)”라고 하는 판에, 한국 검찰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며 그의 집에서 이적표현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마당 사건의 진상은 아직 밝혀진 게 없지만, 그 사건이 정말 정보기관이 벌인 일이라면 김기종씨는 국가폭력의 희생자일 것이다. 지금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은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다시 한 번 국가가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기종씨의 테러는 나쁜 일이고 그는 그가 저지른 일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테러를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링크: [노컷뉴스] ‘리퍼트 공격’ 김기종, 1988년 ‘우리마당 습격’ 피해자
( www.nocutnews.co.kr/news/4377831 )
(201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