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0

2025/12/29

<우주 생명 마음> 중간고사 이의신청에 대한 조치



지난주에 <우주 생명 마음> 중간고사를 보았고, 채점도 다 끝났다. 학생들에게 공지했던 대로 전부 선다형 문제로 냈는데, OMR 카드 리더기가 없어서 내가 손으로 채점했다. 채점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확인한 뒤, 다음 주에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성적을 공지할 생각이다.

오전반과 오후반을 모아서 한 번에 시험을 보면 문제도 한 세트만 내고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자면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시험 문제를 두 세트로 냈다. 아예 다른 범위에서 시험 문제를 낸 것은 아니고, 거의 같은 범위에서 문제와 선지만 바꾸었다. 같은 내용인데 오전반은 선지 중 맞는 것을 고르고 오후반은 틀린 것을 고르라고 한 문제도 있었고, 맞는 것/틀린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경우는 같은 문제에 일부 선지만 바꾸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오전반)

40. 다음 중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설을 주장한 소련 생화학자는 누구인가?

① 레닌

② 스탈린

③ 오파린

④ 푸틴

(오후반)

40. 다음 중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설을 주장한 소련 생화학자는 누구인가?

① 스탈린

② 오파린

③ 부하린

④ 푸틴

이런 방식으로 출제하면 오전반 학생이 오후반 학생에게 문제를 유출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걱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대비책이 있었다. 하나는 답안지 제출할 때 문제지도 이름을 적고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지를 제출하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0점 처리한다고 공지했다. 다른 하나는 시험 전에 출제 문제에 대한 충분한 힌트를 준 것이다. 힌트가 충분하니 문제가 유출되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40번 문제에 대한 힌트로 제시한 키워드 세트는 “오파린, 코아세르베이트”였다.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 저녁 때 강좌 LMS에 문제지와 정답을 올린 뒤 문제 및 정답 이의신청을 받는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10월 31일(금)까지 ‘유효한 이의제기’를 하면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다. 중간고사 후 첫 수업 직전까지 접수된 이의신청은 총 네 건이었다. 유효한 이의제기란 문제에 결함이 있음을 증명하여 채점 결과를 바꾸는 경우를 말하는데, 접수된 네 건 중 유효한 이의제기는 없었다. 중간고사 후 첫 수업 때 학생들의 이의제기 내용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한 뒤, 유효한 이의제기가 없었으므로 가산점도 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학부 다닐 때의 이야기를 했다. 학부 후배 중에 2점대 학점을 3점대 학점으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술자리에서 그 후배가 자기 후배들에게 자기가 학점을 올린 비결을 공개했다. 수업마다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고, 마치 무언가가 궁금한 것 같은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사실은 하나도 안 궁금한 데도 손 들고 질문했더니, 공부 방법을 바꾸거나 학습량을 크게 늘리지 않았는데도 학점이 1점 가까이 올랐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의 철학과는 전반적으로 수업이 파행적이었으니, 학부 후배의 행동은 정말로 학점 상승의 유효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학부 후배의 행동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파행적인 수업의 틈새를 이용한 학생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제공한 교강사들에게 있다. 이들은 강의료 받아놓고 수업을 개떡같이 했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거짓된 행동을 할 유인을 제공하여 인성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살다 보면 먹고살려고 거짓말하게끔 되어 있는데, 대학에서부터 그런 짓을 하게 만든다? 그래 놓고 무슨 놈의 교육이네 교육자네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학생들에게 말한 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말로 유효한 이의제기를 했다면 수강생 전체에게 도움을 준 것이므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의제기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떠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한 이의제기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가? 유효하지 않은 이의제기는 가산점을 받을 수 없다. 이의제기한 학생이 정말로 궁금했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들었다면, 이미 그 학생은 이의제기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만일 그것이 그 학생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면, 그 학생은 궁금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마치 궁금한 듯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학생이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내 학부 후배와 같은 의도로 이의제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학생들을 내가 망치면 안 되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은 이의제기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줄 수 없다.

그래도 이의제기를 한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자니 좀 그렇기는 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고했고 좋은 시도였다고 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2025.10.29.)


2025/12/28

[기타] Ong (1982/2022), Ch 5 “Print, space and closure” 요약 정리 (미완성)



[ Walter J. Ong (1982/2022),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Routledge).

월터 옹, 「5장. 인쇄, 공간, 닫힌 텍스트」,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임명진 옮김 (문예출판사, 2018). ]

알파벳이 그러했듯 알파벳의 활판 인쇄도 임시적 발명품이었음.

중국인은 가동 활자(movable type)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알파벳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상형문자였음.

15세기 중반 이전에 한국인과 위구르인은 알파벳과 가동 활자를 모두 가졌으나 그 가동 활자는 분리된 문자가 아니라 통째로 된 단어였음.

알파벳의 활판 인쇄는 심리적인 비약을 실현한 많은 것 중에서도 제일급의 것임.

그것은 말 자체를 제조 과정 속에 깊이 짜 넣고 말을 일종의 상품으로 만들었음.

최초의 조립 라인은 스토브나 신발이나 무기가 아니고 인쇄본을 생산하는 라인이었음.

조립 라인: 환치가능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동일한 복합적 제품을 일련의 조립 공정을 통해서 생산하는 제조 기술

17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은 인쇄기가 300년 동안 해온 환치가능한 부품 기술을 다른 제품의 제조에도 적용함.

많은 기호론적 구조주의자들의 가정과 달리, 말을 사물로 바꾸고 인식 활동을 사물로 바꾸는 데 실효를 거둔 것은 쓰기가 아니라 인쇄였음(Ong 1958b, pp. 306-18).

그전의 인식 세계에서 중요한 결정권을 지녔던 것은 시각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었으며, 이것은 쓰기를 깊게 내면화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지됨.

서양에서 필사 문화는 언제나 구술문화를 그 주변에 가지고 있었음.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Ambrose)는 <누가복음 주석>(Commentary on Luke)(iv. 5)에서 “보는 것은 종종 사람을 속이지만 귀로 듣는 것은 틀림없다”라고 초기의 분위기를 적음.

서양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모든 어구의 생산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르친 것은 연설임.

연설은 모든 말하기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이었음.

여기서 모든 말하기에는 암묵적으로 쓰여진 말하기와 구술적인 말하기 등이 포함됨.

쓰여진 것은 듣는 것의 보조적인 위치에 있었음.

쓰기는 대부분의 경우, 지식을 구술 세계로 되돌려 재순환시키려는 것

중세 대학의 토론이나 사람들 앞에서 문학 작품 또는 다른 텍스트를 낭독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에게 읽어줄 때조차 큰 소리로 낭독할 수 있도록 함.

영국에서는 12세기 이후까지도 재무회계의 서류를 읽게 하여 감사를 청각적으로 행했음.

우리의 어휘 속에 그러한 관습의 흔적이 남았음(Clanchy 1979, pp. 215, 183).

오늘날 회계사의 실제 작업은 장부를 눈으로 보고 검사하는 것이지만, 현재도 우리는 회계 장부를 ‘듣는다’, 즉 ‘청취하면서 감사한다(auditing)’고 말함.

구술문화에 있던 사람들은 숫자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 들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음.

필사 문화(manuscript cultures)에서는 텍스트 속에 보존된 내용을 정정할 때도 대부분 말하기-듣기(oral-aural)의 방식이 지켜졌음.

필사본(manuscripts)을 그 뒤의 나올 활자본 표준에 따라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독자는 필사본에서 읽어낸 것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내려 했음.

필사본의 내용을 어딘가로 옮기는 것은 반드시 쉬운 것은 아니었음.

고도의 구술성을 담은 필사 문화에서 필사본 내용의 기억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서도 조장되고 또 용이하게 됨.

사실(1): 말로 나타내는 일은 쓰여진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곧바로 상기하기 좋도록 만들어진 기억술에 여전히 종종 따랐다는 사실

사실(2): 독자는 한 사람이 읽을 때도 일반적으로 소리를 내서 천천히 큰 목소리 또는 방백으로 읽었는데, 이것도 내용을 기억에 남겨두는 데 유용했음.

인쇄가 발전하고 나서도 상당 시간 동안은 청각적인 처리가 시각적인 인쇄 텍스트를 계속 지배했음.

청각의 우위는 초기 인쇄본의 타이틀 페이지 등에 현저히 나타남.

그러한 페이지는 시각적 단어 단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줌.

16세기의 타이틀 페이지는 보통 저자명과 같은 중요한 단어라도 하이픈으로 띄어놓거나, 한 줄에서 단어의 앞부분은 큰 활자로, 뒷부분은 작은 활자로 인쇄하기도 했음.

예) 1534년에 토머스 버틀릿(Thomas Berthelet)이 런던에서 출판한 토머스 엘리엇(Thomas Elyot) 경의 책 <통치자(The Boke Named the Gouemour)>의 타이틀 페이지

(그림 1: Steinberg 1974. p. 154 참조).

대수롭지 않은 단어가 거대한 활자로 인쇄되기도 함.

<그림 1>에 제시된 타이틀 페이지에서는 최초의 ‘THE’가 다른 것보다 가장 태어나게 눈에 뜨임.

그 결과 시각적인 디자인으로서는 미적으로 가끔 만족스럽게 되더라도, 이는 오늘날 텍스트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여지없이 파괴함.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본래의 것이며 지금의 우리 방식은 거기에서 일탈한 것.

우리의 태도야말로 변화한 것 바로 그것이며 따라서 설명을 요하는 것.

본래의, 그리고 어쩌면 더욱 자연스러운 과정이 어째서 우리에게는 틀린 것으로 여겨질까?

왜냐하면 우리는 눈앞에 있는 인쇄된 단어를 시각적인 단위(그것을 읽을 때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소리를 낸다 하더라도)로 느끼기 때문.

우리와 비교하면 16세기의 사람들인 텍스트에서 의미를 꺼내는 작업에서 단어의 시각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 소리 쪽에 한층 주의를 집중했음이 틀림없다.

모든 텍스트는 시각과 소리를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는 읽기를 시각적인 활동으로 보고, 그 활동이 우리에게 소리를 지시한다고 느끼는 데 반해서, 인쇄 초기 시대의 사람들은 읽기를 단지 주로 시각에 의해서 움직이는 청각적 과정으로 여전히 느꼈다.

당신이 독자로서 단어를 듣는다고 한다면, 시각적인 텍스트가 독자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전혀 지장은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쇄 이전의 필사본이 단어 사이를 띄지 아니하거나 최소한으로만 띄었다는 것을 상기하라.

그렇지만 결국은 사고와 표현에서 오래 지속되어온 청각의 우위는 인쇄 때문에 시각의 우위로 자리바꿈을 하게 됨.

시각의 우위는 쓰기와 더불어 이미 시작되었으나, 쓰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충분히 개화할 수 없었음.

인쇄는 쓰기가 일찍이 했던 이상으로 가차없이 단어를 공간 속에 위치시켜 놓는다.

쓰기는 소리의 세계에서 시각적 공간의 세계로 단어를 옮겨놓지만, 인쇄는 이러한 공간 속의 어떤 위치에 단어를 못 박아놓는다.

그 위치를 어떻게 정하는가의 문제가 인쇄에서는 전부 다. 손으로 활자를 '짜는 일'(활자 세팅의 본래적 형태)이란 미리 만들어진 글자인 활자를 손으로 적당한 위치에 놓는 일이다.

그렇게 짠 활자는 일이 끝난 후에 재사용에 편리하도록 주의 깊게 원위치된다.

즉, 케이스(대문자 내지 '상단문자'는 상단, 소문자 내지 '하단문자'는 하단)의 적당한 공간 속에 다시 배치된다.

라이노타이프(linotype)로 활자를 짜는 것은, 활자의 한 행이 적절하게 위치한 자모에서 던져질 수 있도록 기계를 사용하여 따로따로 있는 글자의 자모를 각개의 행위에 위치시키는 것.

컴퓨터 단말기나 워드프로세서로 활자를 짜는 일은 미리 프로그램화한 전자적인 패턴(문자)의 위치를 정하는 일이다.

‘주조 활자’(hotmetal type)로 하는 인쇄는 판틀 속에 활자를 놓고 절대로 비틀어지지 않도록 죄어 붙인 다음 판틀을 인쇄기에 단단히 고정하고, 앞판에 밀착시킨 종이의 인쇄면에 활자의 조판을 강한 압력으로 눌러 붙이는 일이 필요하다.

독자 대부분은 자기 눈앞에 있는 인쇄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절차를 의식하지는 않음. 그런데도 독자는 쓰기에서 전해 지는 것과는 전혀 이질적인 ‘공간 속에 놓인 단어’라는 감각을 인쇄된 텍스트의 외견에서 받음.

인쇄된 텍스트는 기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 그러하다.

필사에 의한 공간의 통제는 서예(calligraphy)에서처럼 장식적이고 더덕더덕한 것이 되기 쉽다.

활판 인쇄의 공간은 전형적인 경우 정연성과 필연성에 의해서 한층 인상적으로 통제된다.

즉 필사본 속에서 흔히 있는 가이드 라인이나 외곽선의 도움 없이도 행은 완전히 규칙적으로 놓이고 그 오른쪽 끝은 모두 가지런하며 모든 것은 시각적으로까지 등장한다.

이것이 곧 철두철미 싸늘하고 비-인간적인 실제의 세계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의 “That’s the way it is”라는 텔레비전 뉴스 프로 맺음말은 텔레비전의 이차적인 구술문화를 그 밑바닥에서 떠받치는 인쇄의 세계에서 유래하는 것.(Ong 1971, pp. 284~303).

인쇄된 텍스트는 대체로 필사본인 텍스트보다 훨씬 읽기 쉽다.

인쇄된 것이 훨씬 읽기 쉽다는 데에서 생겨난 결과는 대단하다.

텍스트가 읽기 쉬워져서 속독과 묵독이 가능해짐.

속독과 묵독이 가능해지면서 텍스트에서 저자의 목소리와 독자 사이에 다른 관계가 생겨나고, 쓰기에 대해서도 다른 스타일의 쓰는 방식이 필요해지게 된다.

인쇄는 한 작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저자 이외에도 출판인, 저작권 대리인, 출판사 교정인, 원고 편집인 등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인쇄용으로 씌어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그 뒤에도 저자에 의해 공들여 고쳐 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고쳐 쓰기의 분량이 매우 많은데, 필사 문화에서도 그렇듯 고쳐 쓰기의 분량이 많은지 어떤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오늘의 편집자가 필사 문화 속에서 생겨난 장편의 산문 작품을 정밀조사한다면, 그 대부분이 독창적인 작품으로서는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작품은 인쇄된 페이지에서 재빨리 읽히도록 짜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사 문화는 생산자 지향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개별 작품의 사본은 각 필사자들의 시간을 막대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필사본은 약어로 가득함.

그러한 약어는 독자에게는 불편해도 필사하는 사람에게는 편리함.

인쇄는 소비자 지향적

왜냐하면 개별 작품의 사본들은 훨씬 적은 시간 투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한층 읽기 쉬운 텍스트 몇천 부가 즉시 수정되 는 과정에는 아주 적은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인쇄가 사고와 문체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고려해야 함

(2026.02.08.)


공무원 가족 무고단을 상대하는 나의 각오

내가 읽은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대충 기억에 얼마 전까지 인문계열의 조교수 최초 임용연령 평균은 47.6세였다. 박사학위를 27살에 받는다고 치면 20년, 35살에 받아도 10여 년의 일시적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인문계열의 조교수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