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5

소개팅 2



[1. 소개팅 준비]

소개팅을 해야 하는데 입고 갈 옷이 없었다. 옷을 사야 하는데, 내 안목은 내가 알기 때문에 혼자 옷을 사러 가는 건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같이 사러 갈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랑 가려니 환갑을 앞둔 어머니의 안목을 믿을 수가 없다.

옷장을 뒤지니 언제 가져온 지 모르는 셔츠가 하나 있었다. 남색 티셔츠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그걸 입었다. 그러고는 소개팅에 나올 여자분에게 “편한 복장으로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2. 소개팅 당일(1) - 저녁식사]

원래 오후 7시에 보려고 했는데, 여자분이 월요일 출근할 것을 감안해서 오후 5시에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오후 5시에 만났다.

저녁 때 피자를 먹었다. 내가 피자를 먹고 싶었다. 원래는 피자헛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이탈리아식 피자가 더 나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 싶어서, 그리고 학부 후배들도 그 집이 더 맛있다고 해서 이탈리아식 피자를 먹기로 했다. 후배들 말로는 상당히 맛있다고 했는데 내가 이상한 걸 골랐는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가격도 비슷한데 그냥 피자헛을 갈걸.

샐러드를 시켰는데 이상한 밑반찬 같은 게 나왔다. 짜거나 시큼했다. 멸치젓 같은 것도 나왔다. 싱싱한 채소가 나올 줄 알았는데.

식사하면서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뭔 말을 해야 하나,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 여자분: “운동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 나: “운동을 안 좋아합니다.”

- 여자분: “아, 그럼 보는 것도 안 좋아하시나요?”

- 나: “네.”

- 여자분: “아... 그러시구나...”

- 여자분: “영화관 자주 가세요?”

- 나: “주로 다운받아 봅니다.”

- 여자분: “그럼 최근에 본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 나: “어..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

- 여자분: “혹시 김기덕 감독 영화를 좋아해서?”

- 나: “아니요, 다른 사람이 보러 가자고 해서요.”

그래도 분위기가 험악하지는 않았다.

[3. 소개팅 당일(2) - 커피]


약 1시간 정도 피자를 먹고 가게 밖을 나왔다. 여자분이 “커피 마실래요?”라고 했다. 카페에 갔다.

커피를 앞에 두고 여자분이 나보고 “원래 말이 없으세요?”라고 했다. 나는 “아니요, 그게 아닌데 후배들이 저보고 말이 너무 빠르면서 말이 많다고 해서 자체 검열을 하다 보니까 말이 안 나오는데...” 하면서 안전핀이 뽑혔다. 내 말문이 터지고 동시에 여자분도 웃음이 터졌다.

약 1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7시가 넘었다. 내가 슬쩍 말했다.

- 나: “나중에 친해지면 같이 옷 사러 가요.”

- 여자분: “(계속 웃음) 네 (계속 웃음)”

- 나: “사달라는 거 아니구요, 저는 양아치가 아니니까..”

- 여자분: “(계속 웃음) 네 저도 알아요 (계속 웃음)”

여자분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넜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슬쩍 말했다.

- 나: “저... 주선자 분이 오늘 좋았냐고 물어보면 나쁘지 않았다고 해주세요.”

- 여자분: “(계속 웃음) 네, 알았어요 (계속 웃음)”

[4. 여성분에 대한 평가]

내가 영화 <관상>에 나오는 송강호도 아니고 한 번 보고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만은, 나름 괜찮은 분인 것 같다. 가슴이 뛴다거나 그런 느낌이 온 건 아닌데, 어쨌거나 괜찮은 분일 가능성은 높은 것 같다.

[5. 향후 계획]

친구가 11월 중순에 결혼하는데, 그때는 정장을 입고 가야 하겠는데, 아무래도 어머니하고 정장을 사면 안 될 것 같고, 오늘 소개팅에 나온 여자분하고 정장을 고를지는 모르겠다. 정 안 되면 장교로 근무하는 동생이 휴가 나오면 같이 가서 사야겠다.

[6. 소개팅의 의의]

이번 소개팅의 의의는 나에게 소개팅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구차한 소리를 안 했는데도 알아서 소개팅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번 소개팅은 내 바로 옆자리에서 나를 1년 넘게 본 사람이 주선했고 이 사람은 나를 자신의 친언니에게 소개를 해주려고도 했었다. 이는 내가 그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참고로, 학부 때도 나를 자신의 친언니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한 여자 후배가 있었다. 이 때는 그 언니가 소개팅을 거부하여 성사되지 않았다는데, 어쨌거나 이 또한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3.10.07.)


2014/08/14

소개팅 1



이번 주말에 소개팅을 한다. 처음 하는 소개팅이다.

주선자는 연구실에서 내 옆자리에 앉는 동료 대학원생이다. 주선자는 지난 학기 자신의 친언니를 나에게 소개시켜주려고 했는데, 나에게 지난 학기는 망해가던 학기였고 그래서 내가 소개팅을 두 번 미루었는데 그 사이에 주선자의 친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냥 뭐 그런가보다 이런 일이 나한테 한두 번이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 학기에 동료 대학원생이 또 소개팅을 주선했다. 이번에는 친언니의 직장 동료다. 자세한 정보는 모르고 다만, 팔다리가 길고 피부가 약간 검은, 러문과 출신의 공무원이라고만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응원형]

“화이팅, 잘 하세요!”, “잘 될 거예요!”

[조언형]

“부담 가지지 말고 친구를 만들러 나간다고 생각하세요.” (한 번도 소개팅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대학원생)

“부담 가지고 나가. 이건 너한테 천재일우의 기회다.”

[주의-경고형]

“소개팅 나가서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말아요!”

“옷 그렇게 입고 나가면 여자가 도망가요!”

“선배는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말도 너무 많아요. 소개팅 나가서 그러면 안 돼요!”

“형, 꼭 모자 쓰고 나가.”

[감탄형]

“와!”, “우와!”, “오!”

[음모론자]

“주선자분이 언니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주선자가 너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관람형]

“소개팅 구경 가도 돼요? 와, 정말 재미있겠다!”

“◯일 ◯시 ◯◯◯◯에서 하면 박◯◯◯ 언니랑 같이 구경 가도 돼요?”

[생계형]

“공무원? 와, 그 소개팅 내가 하고 싶다.” (여자친구가 있는 대학원생)

(2013.10.04.)


2014/07/04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희한한 접근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것은 학생들이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는 것은 인문학 전공자의 취업률이 다른 학문 전공자의 취업률보다 낮기 때문이다. 인문학 전공자의 취업률이 낮은 것은 기업에서 다른 전공자보다 인문학 전공자를 상대적으로 덜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절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학만 나오면 기업에서 다 데려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기업에서 다른 전공자보다 별다른 이점이 없는 인문학 전공자를 뽑을 이유는 없다.

과거에는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이 척척 되었기 때문에 학과가 유지되었다. 학생들이 비-인기학과에 입학해서 배우는 것도 없이 등록금을 척척 내놓고는 알아서 취업을 했기 때문에 학과 유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경제 상황이 바뀌고 나서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왔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문제의 본질이 단순한 만큼 대책도 단순하다. 정부에서 부실 대학을 정리하고 예산을 돌려서 학문 후속 세대를 유지할 예산을 지원하면 된다. 하다못해 정부에서 번역 사업만 마음먹고 추진해도 괜찮은 대학의 인문학 전공자는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매우 희한한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이유로 (i) 인문학이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느니 (ii)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느니 (iii) 대중과 유리되었다느니 하는 것을 꼽는다. 인문학의 위기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있으니 자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가 보자.

(i) 인문학이 현실을 다루지 않아 위기에 처했다?

도대체 인문학이 다루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 무엇인가. 김어준의 말을 빌려보자. “나는 그 동안 철학을 우습게 보아왔다. 내 삶의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철학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 이 생각은 강신주를 만나고 바뀌었다. 강신주가 하는 철학이 진짜 철학이다.” 삶의 문제라는 게 무엇인지 들어보면, 힘들고 어렵고 짜증날 때 기분 좋게 말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거 하라고 철학이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존의 인문학이 외국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과 괴리되어 힘을 잃었으며, 그래서 ‘한국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존의 인문학이 해결하지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무엇인가. 막상 그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한국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당위만 앞세우니 논의는 공허할 수밖에 없고, 논의가 공허하니 당연히 마땅한 결론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마땅한 결론이 나오지 않으니까 인문학이 현실과 괴리되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우긴다. 이렇게 무한 반복이다.

(ii) 인문학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아서 위기에 처했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문학으로 드는 예가 문화 콘텐츠다. 문화 콘텐츠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개소리하고 눈 먼 돈을 벌자는 것이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문화 콘텐츠 관련 서적에서는, 혈액형 성격분류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개소리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돈이 되고 이를 이용해보자고 했다. 문화 콘텐츠가 인문학의 살 길이라고 하는 사람들 수준은 대체로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iii) 대중과 유리되어서 위기에 처했다?

인문학의 사회적인 저변이 넓어져야 할 필요는 있다. 이는 인문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문학의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 분야라면 연구 분야가 세분화되어 비-전공자에게 진입 장벽이 생기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개나 소나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는 수준의 분야라면 전문성이 결여된 분야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대중과 유리되어서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는 인문학 전공자들은 실제로도 자기 전공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관리 안 되는 학교에서 등록금만 갖다바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불쌍한 사람들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교수들도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사회를 탓하기에 앞서 자성해야 한다면서 인문학이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느니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느니 대중과 유리되었다느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점이다. 꼭 연구도 안 하고 수업도 제대로 안 하는 교수들이 그런 허황된 소리나 나불거리고, 그런 헛소리는 꼭 언론에 나온다. 그런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멋모르는 학부생들은 맛이 가고, 맛이 간 학부생들은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헛소리를 전파한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교수나 학생을 보면 사람들이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리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공허한 소리나 하고 앉았으면 무슨 수로 비-전공자들이 납득하게 만들겠으며 정책결정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2014.05.31.)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