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도청 감사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민원을 넣은 지 4주 정도 지나서야 감사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한 달 전 쯤에 동네 물류창고 관련하여 도청에 민원을 넣으면서 감사관실을 콕 집어서 이번에는 도청 감사관실에서 감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자료도 모을 만큼 모았고 신문에도 두 번이나 보도되었으니 도청 감사관실에서도 감사하러 나올 만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원래 계획대로 공사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업체는 동네에 묶인 14억 원(공식자료)에서 20억 원(추정)을 회수할 수 없을 것이었다. 업체는 잡았고, 이제 해당 허가를 내준 공무원을 잡아서 연금을 못 받게만 만들면 다 끝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고, 그래서 도청 감사관실에서 해당 사안을 감사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나의 민원을 접수한 지 3주가 지나도록 도청에서 답변이 없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물증이 발견되어 도청 감사관실에 또 민원을 넣었는데, 이번에는 도청 감사관실에서 시청 감사관실로 이첩하면서 몇 가지를 당부하는 내용을 첨부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도청 감사관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예전에 도청에서 시청으로 민원을 이첩할 때는 접수한 지 몇 시간 이내로 별다른 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넘겼는데, 이번에는 그냥 시청으로 넘긴 것이 아니라 시청 감사관실을 지정해서 이첩하면서 도청 감사관실에서 작업하는 것과 겹치므로 이번 사안은 시청 감사관실에서 처리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도청 감사관실은 일을 묵혀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청 감사관실과의 통화는 30분 넘게 이어졌다. 대화해보니 내가 지적했던 사안을 다 살펴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원래 민원 접수하고 2주 안에 답변을 보내야 하는데 4주가 되도록 답변이 오지 않은 것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에도 가서 조사했고 시청에 가서도 조사했고, 우리 동네에도 두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박◯◯ 주무관의 위법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허가 하나 잘못 내주어서 일이 이 지경이 났는데 허가권자의 위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니. 짜증났다. 나는 나와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사무관인지 주무관인지 물었다. 상대방을 아가씨나 아주머니로 부를 수 없어서 물은 것이었다. 상대방이 주무관이라고 답하자 나는 이렇게 물었다. “제가 불법 점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경계 표시하고 나무 심었는데도 공사를 못하잖아요? 저는 합의를 안 해줄 것이기 때문에 업체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공사를 진행하지 못합니다. 주무관님이 보시기에 공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힘들겠죠.”, “그런데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구요?” 주무관은 그래도 위법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도 안다. 아는데 하도 짜증나서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개발행위허가서에는 공사가 잘못될 경우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공사업자가 진다고 나와 있다. 아무리 그래도 뒤지다 보면 담당 공무원의 과실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여 도청 감사관실에 감사 요청을 한 것인데 아직까지 위법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도청 감사관실과 시청이 짜고 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 측 변호사도 우리 동네에 한 번 왔는데, 오죽하면 도청 감사관실 주무관이 우리 동네에 두 번이나 왔겠는가. 누가 보아도 분명히 일이 이상하게 되었고, 신문에도 두 번이나 보도되었고, 나도 나름대로 자료나 정황증거를 모아 제출했으니, 도청 감사관실에서도 4주에 걸쳐 서류를 보고 시청과 한국농어촌공사를 털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위법성이 안 나온 것이다. 박◯◯ 주무관이 나의 어머니에게 “억울하면 소송하시라”고 했는데, 괜한 블러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짜증났다가 다시 마음이 진정되었다. 나는 도청 감사관실 주무관에게 “위법성이 안 나왔다면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주무관은 민원 답변을 2주 연장하고 서류를 더 보겠다고 했다. 도청 감사관실에서 봐도 이상하기는 이상한 일인 것이다.
도청 감사관실 주무관과 30분 넘게 통화하고 나서 든 생각은, 7급 공무원이나 9급 공무원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강한 인공지능이 아니고서야 주무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령 대체할 수 있다고 한들 민원인들이 납득하겠는가? 나에게 답변한 주무관이 인간 주무관이 아니라 인공지능 주무관이었다면, 나는 인간 주무관이 감사하게 해달라고 또 다른 민원을 넣었을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 판사가 인공지능 판사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7급이나 9급 공무원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힘들 것 같은데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판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내가 모르니까 대체될지 말지에 대해 말할 수는 없겠고, 7급이나 9급 공무원보다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더 적합하다고 누군가가 반론하더라도 내가 딱히 할 말은 없겠다. 다만, 두 가지는 짚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인공지능 판사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실제 재판이나 판결 과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판사들이 하는 일을 손바닥 보듯 알아서 인공지능으로 대체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하는 것인지, 아니면 ‘판사 그까짓 거 대충 법조문 좀 읽고 망치 좀 두드리면 되는 거 아니여?’ 하고 생각하고 인공지능 판사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판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송사는커녕 민원도 제기한 적 없는 사람들인 거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민원을 넣고 답변을 들으면서 주무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민원은커녕 법적인 분쟁을 겪을 일도 없이 평안하게 산 사람이라서 할 법한 발상은 아닌가?
하여간, 나는 지난 주에 물류창고 우수관 공사가 잘못되었다는 또 다른 증거를 발견했다. 농로와 맞붙은 우리집 사유지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서, 나는 쇠파이프로 무너진 곳을 쑤셔보았고, 그 결과 우수관 중 일부가 우리집 사유지를 상당 부분 침범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을 도청 감사관실에 민원 넣었고 도청 감사관실에서는 이미 감사 중이므로 해당 사안을 시청 감사관실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시청 허가민원2과에서는 도청의 감사와 시청의 감사를 거의 같은 시기에 받게 되었다. 허가민원2과에서 허가 내준 놈은 도로과로 갔고 해당 부서의 현재 담당자는 이번 일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어쩌겠는가. 그런 것이 운이지. 다음 주 월요일에 시청 감사관과 허가민원2과 주무관을 동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