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8

이토 모토시게의 진로 결정



자기계발서 작가들은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꿈을 매일 확인하며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자기계발서 작가들 중 대부분은 별다른 성취 없이 호구들을 속여먹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성공한 사람들이 직접 쓴 글을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토 모토시게는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별 다른 큰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당시 친한 친구들이 대학원에 가겠다고 해서 따라간 것이다. 대학원 입학시험에 합격한 이토 모토시게는 한 단계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돌렸다. 당시 대학원 입학시험이 꽤나 까다로워서 몇 번씩 낙방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원에 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다음 해 여름에 미국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 말에 놀란 이토 모토시게는 자신도 미국으로 유학가기로 했고 결국 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모두 미국 유학을 갔다. 별다른 목표 의식 없이 친구 따라 대학원에 진학하고 미국으로 유학 간 이토 모토시게는 이후 어떤 사람이 되었나? 이토 모토시게 약력은 다음과 같다.

- 1951년 일본 시즈오카 현 출생

-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박사(국제경제학 전공)

- 하버드대 교환교수

-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 도쿄대학교 교수

- 일본 경제기획청 산하 총합연구개발기구 이사장

- 일본재건부흥추진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이토 모토시게가 학부 때부터 같이 놀았던 친구들은 다음과 같다.

- 요시카와 히로시: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

- 우에다 가즈오: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

- 이호리 도시히로: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

- 아사코 가즈미: 하토쓰바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토 모토시게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의 선택이란 그런 법이다. 이른 나이에 적성을 꿰뚫고 명쾌하게 진로를 결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휩쓸리고 상황에 부대끼면서 진로를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노력해서 그것을 자신의 천직으로 만들어 나간다. ‘나’라는 것은 그렇게 조금씩 정립되어 가는 것이지 원래부터 타고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94쪽)

* 참고 문헌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주는 쓴소리』, 전선영 옮김 (갤리온, 2015).

(2017.11.08.)


2018/01/07

결혼은 모난 사람들끼리 만나서 동글동글해지는 것



각기 다른 사각형과 삼각형이 만나 서로 동글동글 해지는 게 결혼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미 성격이 둥글둥글한 나는 혼자서 데굴데굴 굴러간다. 사람들은 “어? 굴러가네? 와, 잘 굴러간다”라고만 하고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나는 어디로 굴러가는 것일까. 모르겠다.



(2017.11.07.)


2018/01/03

대학원생은 연구자인가?



<경향신문> 칼럼 “대학원생도 ‘연구자’다”에 따르면, 칼럼의 필자는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이라는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싶었으나 박사학위가 없어서 지원 자격조차 없었다고 한다.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이라는 프로젝트 공모가 있었으나 “한국연구재단에서 규정하는 신진연구자는 박사학위 소지자부터”였기 때문에 박사수료생인 필자는 애초에 지원 자격이 안 되었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대학원생이 연구비를 지원받으려고 한국연구재단의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싶었으나 응모자격이 되지 않아 응모조차 하지 못했다니 딱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 있다. 대학원생은 연구자인가? 일단 나는 아닌 것 같다. 다른 대학원생들은 연구자인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칼럼의 필자는 자신을 연구자로 규정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연구자’로 규정했다. 신진이나 후속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자격은 과정생과 수료생 모두에게 있고 논문을 투고하고 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함께 심사가 이루어진다. 나는 연구의 장에 이미 편입된, 그 생태계의 일원이었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로 말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연구자였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즐거웠고, 연구사에 하나의 단어나 한 줄 정도를 보탠다는 자부심으로 계속 버텼다.


필자의 말대로, 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자격은 과정생과 수료생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 대학원생은 연구자인가?

생계가 어렵고 연구비가 없어서 연구자의 꿈을 접는 대학원생이 있다면, 그러한 대학원생들을 지원할 제도나 장치를 만들면 된다. 이는 대학원생이 이미 연구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될 사람이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원생이 연구자가 되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는데 여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그런데 대학원생이 연구자라고 주장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필자의 주장대로 박사수료생도 연구재단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게 한다고 하자. 대학원생들의 형편이 나아질까. 지금과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사수료생과 박사학위자가 연구지원금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이면 누가 이길까? 크립키처럼 학사 학위만 받고 곧바로 교수가 되는 천재들 말고 능력이 비슷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승률이 높을 것이니 박사학위자가 연구 지원금의 대부분을 가져갈 것이다. 어쩌다 싹수 있는 박사수료생이 비실비실한 박사 학위자를 이길 수도 있겠지만 이는 가난한 박사학위자한테 갈 돈이 가난한 박사수료생한테 간 것에 불과하다.

신진연구자(박사학위자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와 대학원생이 받는 지원금을 분리하는 것이 오히려 대학원생에게 유리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대학원생과 박사학위자가 연구비를 두고 경쟁할 경우 박사학위자에게 지원금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학원생이 돈이 없어서 도망가지 않도록 지원을 해달라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지, 대학원생도 연구자라는 식의 자의식 넘치는 주장을 할 필요가 없다. 대학원생도 연구자이므로 연구비를 지원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기획사 연습생도 연예인이라는 말이나 견습생도 노동자라는 말과 비슷하다.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 건 맞지만 받는 사유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돈 받을 사유가 잘못되면 돈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정당하게 돈을 못 받는 일이 생긴다.

대학원생이 자기도 연구자라는 자의식을 가지는 것은 개인 자유라서 그 사람이 연구자에 걸맞는 능력이나 자격이 있든 말든 그 자체로 욕먹을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 언론을 타고 여론에 영향을 주고 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것이다. 연구자도 아닌 사람들의 주장이 마치 연구자의 주장인 것처럼 과대대표 되는 일은 우려할 만한데, 그러한 사람들의 주장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규범적인 주장으로 보아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사람들의 주장이 정책에 반영되면 연구자나 연구자가 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당이나 정의당이 그러한 주장에 낚일 것을 우려한다.

* 링크: [경향신문] 대학원생도 ‘연구자’다 / 김민섭

(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11011153001 )

(2017.11.03.)


단군술 후기

집에 있던 ‘단군술’이라는 북한 술을 다 마셨다. 의외로 괜찮은 술이었다. ​ 20년쯤 전에 부모님이 평양에서 관광하고 오면서 자잘한 북한 물품을 사 오셨는데, 그 중 하나가 단군술이었다. 아무도 그 술에 손대지 않아서 주방 찬장 한구석에 20년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