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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9

이동진 비평에 대한 비평



누군가 잘 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그에게 “문화 권력”이라는 수식어가 들러붙는다. “권력”이라는 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문화 권력”이라고 불리는 건 그냥 그 사람이 요새 잘 나간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용옥도 문화 권력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그가 누린 권력이라고는 욕 많이 먹고 통나무 출판사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뿐이다. 강신주도 문화 권력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그가 누리는 권력은 강연 섭외 많이 들어오고 책 많이 팔린다는 것뿐이다.

<ㅍㅍㅅㅅ>에 실린 “평론가 리뷰. 이동진 편”은 평론가 이동진을 비평하는 글이다. 이 글은 한국의 다양성 영화가 “이동진이 소개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뉘며 그래서 “한국에서 소개되는 다양성 영화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동진이 배급사도 아니고 CJ도 아닌데 이게 무슨 말인가. 이동진은 일개 평론가다.

설정부터 허구적이니 결론 부분에서는 결국 그 밑천을 드러내고 만다.


이동진을 싫어하진 않는다. [...] 물론 그의 팬덤도 싫어하진 않는다. [...] 다만 그의 호흡법과 태도가 지배적인 작금의 현상에 대해서는 다소 염려를 표하고 싶다. 모든 워너비가 장기적으로 불필요하지만, 특히 이동진과 같은 태도를 흉내 내는 것은 아직 내공의 틀이 잡히지 않은 리뷰어들에게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이동진을 비평한다고 글을 시작해놓고 “따라쟁이들 적당히들 따라하셔” 이러고 끝난다.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자. “아직 서예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추사체를 흉내 내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추사체를 비평한다고 해놓고 “나는 추사체를 싫어하지 않으며 추사체의 인기도 싫어하지 않으나 개나 소나 따라 쓰는 건 문제다”라고 한다고 해보자.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비평이라고 하지 않는다.

글의 다른 부분을 봐도 하나 같이 이상하고 말이 안 된다.


이동진은 타르코프스키와 베리만을 좋아하는, 기본적으로 아주 우아하고 점잖은 영화 취향을 가진 평론가다. 그는 하모니 코린의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쭉쭉빵빵 누나들의 비키니 몸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짐 자무쉬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뻔뻔스런 뱀파이어 유-우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속 정교한 플롯과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현대인들의 관계를 읽어내면서 “그래서 그 할아버지랑 그 여자애랑 잤다는 건가?” 따위의 저속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겨울왕국> 속 디즈니의 정치적 질문에 호들갑을 떠는 대신, 영화 속 결말 비틀기는 또 다른 관습에 불과하다며 거리를 유지한다.


“우아한 지식인을 대변하는 이동진의 모순”이라는 소제목을 달았지만 이동진이 우아한 지식인을 대변하는 것도 나오지 않고 이동진의 모순도 나오지 않는다. 비평자는 이동진이 “기본적으로 아주 우아하고 점잖은 영화취향을 가진 평론가”라면서 이동진이 영화에 대한 저속한 질문을 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평론한다고 비평한다. 별 게 다 불만이다.

비평자는 “쭉쭉빵빵 누나들의 비키니 몸매에 대해 말하”며 히히덕거리는 것이나 영화에서 “그 할아버지랑 그 여자애랑 잤다는 건가?” 따위의 질문이나 하는 것을 영화 평론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평론가 지망생이라는 사람들이나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 중 대부분은 수준 이하인데, 이는 글에 넣어야 할 부분과 빼야 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으로 마구잡이로 쓰기 때문이다. 쭉쭉빵빵 누나들의 비키니 몸매나 할아버지와 여자애가 잔 것이 해당 영화를 비평하는 데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가?


이동진은 2011년 연말결산에서 외화 1위로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를, 국내영화 1위로 홍상수의 <북촌방향>을 선정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웬만큼 공인된 외국의 아트하우스 영화들에는 거의 항상 호평을 쏟아내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동진의 추종자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노예 12년>을 칭찬하고 <300: 제국의 부활>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 자신들을 일종의 방어선으로 생각하는 것. 그런데 그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혹은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평가가 끝난 것처럼 보이는 영화들에(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와 <300>의 후속편에 대한 미학적 평가라니. 이보다 더 따분할 수 없다) 대한 확인사살이야 말로 (이동진이 에 대한 평에서 쓴 것처럼) “철지난 돌림노래처럼 다가온다.” 2013년 흥행 5위를 기록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돌풍을 “우리까지 휩쓸릴 필요 없는 이상한 열풍”(이동진과 세트로 묶이는 김태훈의 말이다. 이 말을 내뱉고 난 뒤, 뭔가 우쭐했던 그의 표정을 혐오한다)이라 말하는 것보다 더 꼰대스럽고 오만한 태도가 또 있을까.


이동진이 <노예 12년>을 칭찬하고 <300: 제국의 부활>을 비판한 것이 왜 문제인가. 비평자는 “이동진과 세트로 묶이는 김태훈”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두고 “우리까지 휩쓸릴 필요 없는 이상한 열풍”이라고 말한 것을 “꼰대스럽고 오만한 태도”라고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김태훈이 그러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충분히 못 만든 영화다. 비평자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을 “2013년 흥행 5위를 기록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돌풍”이라고, 마치 흥행 5위한 게 뭐 대단한 권위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흥행 5위라는 건 사람들이 극장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본 영화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워>도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다. 비평자의 영화 보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악마를 보았다>에 대한 평이 그나마 귀엽게 봐줄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면, 그의 인문학적 오만함이 심히 거슬릴 정도의 글도 있다. 본인이 극찬하는 영화에 대한 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곤 하는데, 특히 <박쥐>나 <안티크라이스트>, <토리노의 말> 같은 영화에 대해서는 본인의 전공인 종교학, 도상학과 결부시켜 마치 본인이 감독이라도 된 양 자신의 지성과 소양을 뽐내가면서 영화를 방어하는데-- 영화를 방어하기 위함인지 자신의 소양을 뽐내기 위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오만하거나 위압감이 드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글을 진행시켜야 될지 몰라서 어마어마한 무리수와 과장을 잔뜩 실어 담고 있는 인상이었다.

이웃 블로거 홍준호님은 황진미, 심영섭 평론가를 두고 “자신이 의사의 능력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평론을 쓰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비교를 강조하기 위해 이 멋진 구절을 빌려와 다소 비틀고 싶다. 가끔 어떤 영화 앞에서 이동진은 본인이 서울대 종교학을 나왔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평론을 쓰는 것 같다.


비평자는 이동진의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은 채 “이동진은 본인이 서울대 종교학을 나왔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평론을 쓰는 것 같다”고 한다. 이런 저질 문장만 봐도 비평자가 적절한 비평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동진에 대한 비평만 봐서는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비평자가 이동진을 안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비평자가 이동진의 비평을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적절한 비판점은 단 한 가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글 내내 어떠한 근거나 출처도 제시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기분이 든다”, “이러저러한 인상을 받는다”면서 자기 인상이나 죽 늘어놓고는 “이동진이 아저씨 유머를 그만둘 때까지 이동진을 까겠다”고 한다. 비평자는 자신이 이동진을 까는 행위가 뭔가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 정도 수준의 글을 써서 이동진이 꿈쩍이나 하겠나 싶다.

* 링크: [ㅍㅍㅅㅅ] 평론가 리뷰. 이동진 편

( http://ppss.kr/archives/35389 )

(2014.12.20.)


2015/02/08

고량주를 마시고 정신을 잃다



지난 주말에 중국 음식점에서 술을 마셨다. 그날 간 중국 음식점은 짜장면, 짬뽕 나오는 한국식 중국 음식점이 아니고 중국 사람이 먹는 음식과 비슷한 음식이 나오는 중국 음식점이었다. 양고기 샤브샤브와 양념에 볶은 양고기를 안주로 먹었다.

처음에는 양념이 매우 강하다고 느꼈는데, 술을 마실수록 양고기 양념이 약해지더니 나중에는 마치 집에서 먹는 돼지고기 볶음의 양념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동아리 후배와 비슷한 음식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양념이 너무 강해서 나온 음식의 반도 못 먹었다. 왜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랐을까? 내가 그동안 중국 음식에 익숙해져서? 중국식 중국 음식을 거의 안 먹었기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후배와 먹을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이번에는 고량주를 마셔서 그랬던 것 같다.

양고기를 먹으면서 나는 중국 음식의 향과 기름기 등이 중국 술의 도수와 상관관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가설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추우니까 도수가 높은 술을 먹는다고 치더라도, 중국은 상해만 가도 여름에 더워서 죽을 판이니 날씨 때문에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는 건 아닐 거고, 음식과 관계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양념이 강하니 도수가 높아져야 하고 도수가 높아지니 양념이 강해져야 하는, 일종의 오디오쟁이가 거덜 나는 패턴과 동일한 패턴이 중국 음식에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 오디오쟁이 망하는 패턴: 오디오를 산다 → 더 좋은 스피커를 산다 → 출력이 약해 출력을 높인다 → 스피커가 약해 스피커를 높인다 → 출력이 약해 출력을 높인다 → 스피커가 약해 스피커를 높인다 → ... → 파산)

그런데 나는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 음식 맛을 다르게 느끼는 것은 맛이 갈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 사람이 고량주 네 병을 나눠 마시고 있었던 그때, 나는 이미 맛이 가고 있었다.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와 대학 동기 자취방에 갔다. <무한도전>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중간에 내가 정신을 잃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나는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방바닥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학 동기에게 말했다. “<수호지> 보면 술집에서 심심하면 술에 약 타잖냐. 그거 약 탄 거 아니고 그냥 과음한 거다. 보면 주인공들이 ‘어...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안 움직이네.. 어...’ 이러잖냐. 멀쩡하긴 뭘 멀쩡해. 술 먹고 맛 가는 놈들이 다 그렇지. 나는 어제 그런 체험을 했다.”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너 아직 술이 안 깬 것 같은데?”

중국에 증류주가 소개된 것은 원나라 때라고 알려져 있다. 몽골군이 중동에서 증류법을 배워왔고 거기서 지금 동아시아 증류주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수호지』의 배경은 송나라 때지만 저작 시기는 원말 명초이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 중에는 증류주 먹고 맛이 가는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발효주를 먹고 맛이 가는 것과 증류주를 먹고 맛이 가는 것은 다른 경험이며 이게 소설에 반영되었을지 모른다. 일어나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동기의 말대로 내가 술이 덜 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기 집에서 나와 곧바로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했고 기도하며 회개했고 새 사람이 되었다. 새 사람이 되었으니 연말에 또 술을 마실 것이다. 원래 새 술은 새 사람이 먹는 법이다.

(2014.12.16.)


2015/02/06

한국은 왜 일본처럼 번역 사업을 하지 못했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번역 사업을 했기 때문에 일본어로 학문을 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면서, 한국도 일본처럼 했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건 의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왜 한국은 일본처럼 할 수 없었나?

번역 사업을 하려면 번역 인력이 있어야 한다. 외국어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를 잘 알면서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 번역에는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기 연구를 미루어두고 번역에 시간을 전념할 수 없다. 연구자 수가 많으면 번역에 전념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번역해도 되니까 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겠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분야든 연구자 수가 충분하지 않다.

연구자 수는 경제 규모와 인구 규모에 비례한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해서 고구려 역사가 쟁점이 되었을 때, 중국은 고구려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데 한국은 다섯 명 밖에 안 된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25배 정도 많기 때문에 그 정도 연구 인력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사학 전공자가 고구려사에 몰리면 다른 분야가 구멍 난다.

일본은 18세기 초반에 이미 인구가 3천만 명이 넘었다. 한국은 20세기가 들어서야 인구가 3천만 명이 넘어서는데, 김구 선생이 “3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고 할 때의 그 3천만은 남북한 합쳤을 때의 숫자다. 한국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인구가 3천만 명이 되는데, 분단되어서 그게 반 토막이 난다. 이후로도 반세기 동안은 번역 사업 같은 것을 할 여건이 못 되었고, 지금도 연구자는 모자라다. 정부에서 돈을 아낌없이 지원한다고 해도 연구자가 모자라서 단기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듣기로, 일본에서는 웬만한 외국 서적은 1년 이내에 일본어로 번역된다고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연구자들이 1년 내내 번역만 해도 일본처럼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연구를 안 할 수 없으니 그냥 원어로 봐야 한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길이 달라졌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상황이 이러니, 모국어로 학문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 통일한다고 해도 북한이 워낙 상태가 메롱이라 한 세대 안에 뭔가 뾰족한 수가 안 나올 것이다. 당분간은 연구자가 이중 언어 사용자 비슷하게 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영어를 아직도 심각하게 못 하는 나는 그냥 가슴이 답답하다.

* 링크: [한국일보] 우리말로 학문하기 / 서화숙

( www.hankookilbo.com/v/196508af110047d99e9d600dea9ef2df )

(2014.12.05.)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