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5

회색 지대



나의 전 지도교수님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학생이 지도교수와 급히 연락해야 하는 상황에도 선생님과 연락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예전 지도학생 중에는 논문 관련하여 선생님과 연락해야 하는데 연락이 잘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것이 오해라고 하는가? 선생님이 나에게는 먼저 연락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연락이 잘 안 된다고 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해야 할 일을 제때 하는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이 분초를 다투는 작업으로 보였겠지만, 아마도 선생님 눈에는 그렇게까지 급한 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내가 아는 여러 지도학생들은 자기 작업을 기한 내에 적절히 처리했다. 선생님은 급한 일이고 뭔가 문제가 있다 싶으면 학생에게 먼저 연락하신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지도학생 중에는 그 정도로 학위논문 작업을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고 간 사람이 드물었다는 것이고, 나는 그러한 드문 사람 중 하나였던 것이다.

석사 3학기 중반이 지났을 때쯤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석사논문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해서 이번 학기는 어렵다고 내가 답변했다. 그 때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쉬셨는데 선생님으로서는 나름대로 상당히 격렬한 감정 표현을 했던 것 같다. 4학기가 되었는데도 작업에 진척이 없었다. 그 때 나는 선생님이 안경을 벗고 얼굴을 쓸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상당히 피로해 보였다. 나중에 대학원 선배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선배들 중에 선생님이 안경 벗은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선생님이 안경 벗은 모습을 본 유일한 지도학생인 셈이다.

학기마다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나는 선생님의 연구실에 가서 선생님이 안경을 벗고 얼굴을 연신 쓸어내리는 것과 그 직후 나타나는 매우 피로해 보이는 얼굴을 보았다. 학기가 거듭될수록 선생님이 자기 얼굴을 쓸어내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렇게 9학기가 되었다. 사실,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데 9학기까지 걸릴 것은 아니었다.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데 평균 6학기 정도 걸린다. 4학기까지 수업을 정상적으로 잘 소화하고 5학기에 논문을 써서 6학기에 심사받으면 6학기 졸업이다. 그냥 졸업해도 될 것 같은데 지도교수가 한 학기 더 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하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똑똑한 사람이고 이후에 유학도 좋은 데로 잘 갔는데도 석사학위 취득에 7학기, 8학기가 걸린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냥 진척이 없었고 계속 진척이 없었던 것뿐이다.

선생님도 답답했을 것이다. 보통은, 학생이 먼저 졸업을 해보겠다고 연락한다. 완전히 망한 것을 쓴 학생이라도 어떻게든 졸업을 하겠다고 우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께 이번 학기는 곤란하겠고 아직 선생님께 보여드릴 상태도 아니라고 먼저 말했다. 내가 취업을 한 것도 아니고 뭔가를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그러고 있으니 선생님으로서는 이게 뭔가 싶었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내가 일정 수준 이하의 것을 가지고 가서 졸업하고 싶다고 우기면 선생님이 내가 안목조차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보았다. 내가 실력은 없지만 그래도 안목은 있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 안목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 내가 현재 상태만 안 좋은 것이 아니라 개선가능성조차 없다고 판단하게 만들 것 같았다. 음정-박자를 안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음정-박자도 모르는 사람은 아예 노래를 잘 부를 가능성도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렇게 9학기까지 간 것이다.

9학기에는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6학기 이후로 계속 위기였지만 9학기가 진짜 위기인 것은 다음 학기부터 선생님의 연구년이 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연구년 시작되면 선생님이 1년 간 외국에 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든 9학기에는 졸업해야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현재 진척 상황이 이 정도라는 내용으로 A4용지 열 쪽 정도 되는 분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종의 상황보고 겸 기획서 비슷한 것이었다. 학위논문 기획서는 6월 말까지는 제출했어야 했는데 그 때는 9월 중순이었으니 졸업이고 뭐고 물 건너 간 상황이었다. 그래도 내가 아주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늦게라도 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메일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나중에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은 주로 이메일로 약속을 잡거나 하기 때문에 먼저 전화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당시 상황을 매우 다급한 것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지도교수: “메일을 보았는데, 만일 자네가 원한다면, 논문을 작성해도 되겠네.”

- 나: “네?”

- 지도교수: “내가 자네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네만은, 만일 자네가 논문을 작성하고 싶다면, 논문을 작성할 수도 있겠네.”

어떻게든 논문을 작성하라는 것을 순간 알아듣고 나는 “네,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러면, 논문 작성을 진행하겠다는 말로 이해하겠네”라고 하셨다.

원래는 6월 말까지 계획서를 제출하고 8월 말까지 초고를 제출해야 하는데 당시는 9월 중순이었다. 10월 초순까지 초고를 완성해야 했다. 대충 요약해놓은 것과 메모해놓은 것이 있었지만 논문에서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어쨌든 해야 했다.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고, 또 다음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2주 동안 물 대신 커피만 마시면서 잠도 거의 안 자고 의자에 앉아서 잠깐 한두 시간 눈을 붙이며 계속 작업했다. 나는 개신교 신자인데 왜 장좌불와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초고가 나오기는 나왔다. 논문 제출기한을 넘기기 직전에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연락해서 죄송하지만 3일 안에 제출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놓고는 제출기한을 일주일 넘겨서 제출했다.

그렇게 제출기한을 넘겨서 논문을 금요일에 제출했는데 마침 그 날이 박사과정 입학원서 제출 마지막 날이었다. 그 날 아침에 논문 초고를 지도교수님께 이메일로 제출하면서 박사과정 입학과 관련하여 의논할 것이 있다고 했다. 점심시간을 지나서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교에 있으면 곧바로 선생님 연구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연락을 받고 곧바로 선생님 연구실로 갔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당시 석사 논문이 통과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없었다. 심지어 초고를 몇 시간 전에 제출했으니 선생님은 초고 상태가 어떤지도 모를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 나: “선생님, 제 논문이 통과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그래도 박사과정 지원 기간도 고려해야 하니까 심사 전에 진로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는 방향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지도교수: “어... 그런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벌써 5년 전 일이라서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반드시 와야 하는 사람이 있듯이 대학원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제가 대학원 다니면서 아직까지 그다지 유망하다고 생각할 만한 모습을 보여드린 적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래서 선생님께서 판단하시기에 제가 아주 가망이 없다든가 대학원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셔서 선생님께서 받아주신다면 좋겠는데, 어쨌든 저는 선생님의 판단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몇 가지를 더 말했던 것 같기는 하다. 내가 굳이 경제학의 철학으로 석사논문을 쓰려고 한 것은 자연과학을 몰라서 이를 만회하려는 것도 있지만 이왕이면 내가 하는 작업이 공동체에 기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내가 쿤으로 논문을 썼다면 어쩌면 쓸 수도 있었겠지만 기존 논문보다 딱히 나은 것을 쓸 것 같지는 않았는데, 경제학의 철학으로 쓴다면 내가 대단한 성과를 못 낸다고 하더라도 다음 후발주자가 맨 땅에서 시작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있었다 등등.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리면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혹시라도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간다면 투입 비용보다 효용이 더 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학교에서 나에게 그렇게 투자를 많이 하지도 않을 것 아닌가. 정크 본드에 투자하는 셈 치고 나한테 투자를 해보라고까지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사실 그 말이 그 말이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선생님이 또 안경을 벗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투입 비용보다 산출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시나? 학교에서 투입도 얼마 안 할 건데 내가 그만큼도 산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나? 아, 망했네. 박사과정에 못 가는 건가?’

다니던 학교에서 박사과정으로 안 받아줄 정도라면 선생님이 보기에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안목이라든지 공평무사함을 믿기 때문에 선생님이 박사과정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다른 학교 박사과정은 기웃거리지 말고 아예 깨끗하게 그만두어야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가? <딴지일보>에 가야 하나? <딴지일보>에서 나를 받아준다면 아마 한국의 음모론의 수준이 훨씬 높아질 것 같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거기서 나를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선생님이 연신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더니 어딘가 허공을 보면서 혼자서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 말씀하셨다. 뭐라고 하시나 들어보니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다.

“아... 대학원에 오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대학원에 오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니... 아....”

그렇게 선생님께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어딘가를 응시하고 계셨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대학원에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왜 선생님은 저렇게 당연한 말을 계속 혼자 읊조리는 것인가? 내가 그 정도로 대학원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인가?

몇 분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한참 동안 말씀을 안 하셨다. 그러다 뭔가를 말씀하시려는 듯 선생님 입술이 움찔움찔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나 입술을 쳐다보았는데,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멈추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지긋이 눌렀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났다. 침묵은 너무 길었고 그 동안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혼내면 묵묵히 그냥 혼나야겠다, 그리고 쫓겨나면 <딴지일보>에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 선생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어... 대학원에 반드시 와야 하는 사람과... 어... 대학원에 절대로 오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만은... 그...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extreme은 그렇게 많다고 볼 수는 없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gray area가 넓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양극단의 경우보다는 gray area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고... 그러니까... 교수가 받아주면 대학원을 가지.. 하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 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네만은...”

나는 나의 투자가치라든지, 나에게 한정된 자원을 사용할 때의 비용/편익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하여 선생님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답변은 놀랍게도 내가 생각보다 회색 지대가 넓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석사학위도 못 받은 놈이 대학원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선생님이 회색 지대가 생각보다 넓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그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회색 지대가 넓다니. 그러면 나는?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 나: “개인의 의지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회색 지대에 포함되었을 때의 일이고, 회색 지대에 포함이 안 되면 개인의 의지라는 것도 무력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일단 선생님께서 판단하시기에 제가 회색 지대에는 들어간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면...”

- 지도교수: “그러니까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gray area가 넓고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 너무 단정하는 것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우선 개인이 의지를 가지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내성적인 두 남자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먼 나라 이웃 나라 - 일본 편』에 나올 법한 대화를 왜 한국인들이 하고 있느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사과정 입학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나: “아직 석사 논문이 통과되지 않았고, 또 선생님께서 판단을 내릴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서 당장 결정내리는 것보다는 조금 더 생각해보시고 결정을 내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사과정 입학 신청 기간을 넘기면 아예 이번 학기에는 응시할 기회가 없어지니까 일단 원서만 내고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이후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원 기간 내에 지원하지 않으면 아예 지원 기회가 없어지니까 일단 지원만 하고, 선생님께서 (박사과정) 면접을 보라고 하시면 면접을 보고, 면접을 보지 말라고 하시면 안 보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원하는 데는 입시 전형료가 들어갑니다만 그리 큰돈이 아니라서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 지도교수: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단은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지. 그런데 지원 기간이 있을 텐데 언제까지 지원해야 하는 건가.”

- 나: “오늘 오후 5시까지입니다.”

- 지도교수: “지금이 3시가 넘었으니까 얼마 안 남았네. 그러면 서둘러서 지원을 해야겠구만.”

- 나: “네, 그러면 일단 기한 내에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이후 일정은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지도교수: “그래, 일단은 그렇게 하고 이후 일정은 아직 시간이 더 있으니 나중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지.”

그렇게 면담을 끝내고 곧바로 연구실로 내려와서 박사과정 입학원서를 작성했다. 누군가가 내 명의를 도용할까봐 실명인증 보안을 여러 개를 해놓았는데 결제를 하려니 그게 안 풀려서 하마터면 지원서를 못 낼 뻔했다. 명의도용 당해봤자 털릴 것도 없는데 왜 나는 보안을 여러 개나 해놓았을까. 오후 4시 53분인가에 최종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감 7분 전이었다.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논문 심사를 받고 논문이 통과되었고, 다시 그 다음 주에 협동과정 박사과정 면접을 보고 입학승인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내 석사 졸업 과정을 지켜보았다. 연구실 복도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경과를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며칠 전까지 이번 학기도 졸업하기 글렀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번 학기 중으로 논문을 못 쓰면 큰일 나겠다고 하더니, 잠도 안 자고 계속 뭘 쓰더니, 논문을 다 썼다고 하더니, 심사도 본다고 하더니, 논문이 통과되었던 것이다. 어떤 대학원생은 대학원 다니면서 이렇게 흥미진진한 학위 취득과정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나보다 열 살 많은 대학원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경우는 처음 봐.”

협동과정에 입학해서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대학원 선배들도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보통은 석사과정이 길어지면 박사과정에 못 오게 되는 데다, 어떤 절차에서 기한을 넘기고 나서 그 다음 절차로 넘어간 것도 못 보았는데, 이런 식으로 절차마다 어길 수 있는 기한은 다 어기고 그러면서도 논문 심사를 받고 박사과정까지 온 사람은 못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나를 날리려고만 했다면 각 절차마다 날릴 기회와 명분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날아가도 나는 할 말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을 나도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걸 다 묵인해주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회색 지대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다고 했는데, 나는 회색 지대의 어디쯤에 서 있나? 나는 가끔씩 나에게 무언가를 묻기는 하지만, 지금 잘 하고 있느냐고는 묻지 않는다. 지금 잘 못하는 것이 명백해서 굳이 그런 것을 스스로 묻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 잘 할 수도 있겠지? 몇 년 안에는 잘 할 수 있겠지?”하고 혼자 묻는다. 그리고 “몇 년 안에 잘 해야지” 하고 혼자 대답한다.

(2021.05.15.)


2021/07/14

한남충 보이루 논문 사태에 하인리히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RISS에서 논문을 찾아보았다. 논문을 대충 훑어본 다음에 그 논문이 어느 학술지에 실렸는지 보았다. <철학연구회>에서 발행하는 『철학연구』에 실린 논문이었다. 『철학연구』? 윤지선 박사의 보이루 논문이 실린 『철학연구』? 내가 알기로, 『철학연구』이라는 이름의 학술지는 한국에 두 개이다. 설마 그 『철학연구』일까. 그런데 찾아보니 그 『철학연구』였다.

분명히 내가 찾아본 논문은 정상적인 논문이었다. 이런 정상적인 논문이 『철학연구』에 실렸다니. 다른 권호에 어떤 논문이 실렸는지 찾아보았다. 믿을 만한 선생님들이 게재한 논문들이 줄줄이 나왔다. 1966년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 같은 건 내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근호에도 정상적인 논문이 게재되어 있었다.

올해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터지고 나서 <철학연구회>가 이상한 논문을 게재했다고 욕먹고 있을 때도 나는 <철학연구회>가 입을 피해 같은 것은 걱정하지도 않았다. KCI 철학 등재지만 해도 40개나 되기 때문에 이번 참에 한두 개 망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다 똑같은 KCI 등재지이겠지만 나름대로의 암묵적인 위계가 있다. 이상한 논문이나 싣는 학술지가 망하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철학 분야의 해외 최상위권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선생님도 『철학연구』 최신호에 논문을 실었던 것이다. 그 선생님 성격을 고려해본다면 아마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터질 줄 알았다면 『철학연구』에 논문을 내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한데, 하여간 그랬던 것이다.

도대체 <철학연구회>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윤지선 보이루 논문이 실렸던 것인가? 멀쩡히 연구 활동을 하던 다른 학회원들은 가만히 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한 것인가?

그런데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마른하늘의 날벼락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도 윤지선 박사의 논문이 『철학연구』에 게재된 적이 있다.

2018년 『철학연구』에 실린 「디지털 성범죄 시스템의 형이상학적 분쇄도: 남성 시선-주체의 인식좌표계 분석」이라는 논문은 「한남충의 발생학」 못지않게 기괴한 논문이다. 제목에 ‘형이상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쥐뿔이나 형이상학 같은 것과는 상관없고 역시나 자유연상법에 따라 쓴 글이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여 불법 촬영하니까 주체-객체 이분법 같은 소리나 하고, 진중권이 남근 다발이라고 한 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남근 다발체 같은 단어나 만들어내고, 촬영하면 시공간, 시공간 하면 좌표계, 이런 식으로 특권적 인식 좌표계가 어쨌다나 저쨌다나 하는, 짜증날 때 짜장면, 우울할 때 울면, 복잡할 때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 같은 소리를 논문의 형식을 빌려 싸놓은 것인데, 그게 『철학연구』 122권에 실린 것이다. 그러니까,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적어도 2018년부터 잠재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윤지선 보이루 사태에도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하인리히 법칙은 큰 재해,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며, 이는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철학연구』에 게재된 논문들을 전수조사하면 어떤 패턴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 뱀발: 현재 RISS에서 윤지선 박사의 다른 논문은 다 검색되는데 『관음충의 발생학』 논문은 검색되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장애인지 아예 검색을 막아놓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논문을 이미 다운받아놓았다.

(2021.05.14.)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