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7

학문의 균형2



코로나19 때문에 학부 수업은 물론이고 대학원 수업까지 원격화상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줌(Zoom)이라는 업체와 단체 계약을 했다고 한다. 화상 수업이 잘 되어봤자 얼마나 잘 되겠나 싶었는데, 실제 수업하는 것을 보니까 수업도 생각보다 잘 진행되었고 사람들도 예상보다 잘 적응했다. 언어철학 선생님은 수업 중에 “이러한 수업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는데 해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요” 라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줌이라는 업체의 주식이라도 살 걸 그랬다.

지난 주에는 전 지도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전 지도교수님이 이번 학기에 <과학철학통론1>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내가 조교라서 연락하신 것이었다. 내가 딱히 할 것은 없었고 수업 자료 중 일부만 챙기면 되었다. 선생님은 애초에 스카이프로 수업을 하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선생님이 나보다 훨씬 잘 아는 듯 했다. 나는 굳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지만 선생님이 첫 수업을 어떻게 하시나 궁금해서 실시간으로 동영상 강의를 보았다. 아무런 기술적인 문제없이 수업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전 지도교수님의 수업에서 늘 그렇듯, 이번 수업에서도 학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현 소속, 학부 때의 전공, 학문적 배경, 학문적 관심사를 밝혀야 한다. 이번 수업에는 생물학이나 생명공학을 배경으로 한 학생들이 많았다. 학부 때 생물학을 전공한 철학과 대학원생도 있었지만, 철학 수업을 거의 듣지 않은 학생도 많았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뭐...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은... 생물학을 했고, 또 과학철학에서 철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과학이고... 또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 논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다른 공부를 한 것이니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내 수업에 철학 베이스가 없는 학생이 들어온 것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닙니다.” 물리학과에서 온 학생이 있었으면 반가워하셨을 텐데 이번 수업에는 물리학과에서 온 학생은 없었다.

한 학생이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학부 때 철학과를 다녔습니다.”, “요즈음에는 복수 전공이 활성화되어있다고 알고 있는데, 자네는 혹시 복수전공을 한 것이 있나?”, “서양사를 복수전공했습니다.”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그... 음... 뭐, 서양사를 복수전공 했다고 하니 철학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겠구만.” 선생님이 ‘철학+미학’ 조합보다 ‘철학+역사’ 조합에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학문의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문/이과 구분이 교육에서 얼마나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학문의 불균형이 한국에서 학문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 맞는 말씀인데, 약간 힘주어 말씀하셨다. 선생님 강의를 연구실에서 컴퓨터를 통해 듣고 있는데 마침 동료 대학원생이 연구실에 들어왔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선생님 수업을 듣지 못한 대학원생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화나신 게 아니구요, 첫 수업에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철학만 하겠다는 것은 망하겠다는 길이다.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철학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말씀에 대해 전기과에서 온 대학원생은 이렇게 말했다. “크게 망하는 길과 작게 망하는 길의 차이에 대한 거군요.” 크게 망하는 길은 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것을 말하고, 작게 망하는 길은 학부 때 다른 전공을 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이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말씀만큼이나 동료 대학원생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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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ABC론에 대한 만평을 구글 제미나이로 만들어 보았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 ​ ​ ​ * 뱀발 ​ 어떤 분이 유시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새의 이름이 ‘촉새’냐고 물어보셨다. 생각해 보니 그럴 듯해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