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1

글쓰기에서의 절제의 중요성



글 쓸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아마도 절제일 것이다. 글에서 쓸데없는 부분은 쳐내는 데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쓸 내용을 다 썼으면 거기서 멈추고 뺄 내용을 빼야 글이 나아진다. 많은 사람들은 넣지 말아야 할 것을 더 넣어서 글을 이상하게 만든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보다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글에 더 해롭다. 있어야 할 것이 약간 없으면 좀 밋밋하다 싶은 글이 될 수 있지만, 없어야 할 부분이 버젓이 있으면 심지어 글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마치, 삼계탕에 인삼이나 마늘이 안 들어가면 조금 아쉽지만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이 되지만, 삼계탕에 독극물이 들어가면 아예 못 먹는 것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망한 글에 이상한 짓을 해서 더 망하게 된 경우는 하나도 안타깝지 않다. 빚이 100억 원 있으나 101억 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멀쩡하게 글을 잘 써놓고는 막판에 이상한 문장 몇 개를 덧붙여서 뒷맛이 안 좋게 된 경우다. 논문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서론부터 본론까지 멀쩡하게 써놓고 결론 끝부분에 유치한 글을 덧붙여서 글이 격조가 떨어지는 논문도 가끔씩 있다. 연구를 멀쩡히 잘 해놓고는 왜 막판에, 꼭 고미숙 박사의 책을 세게 읽은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쓴 것 같은 문장을 덧붙여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그럴 거면 연구나 제대로 하지 말지. 그런 글을 보면 남이 쓴 글인데도 내가 안타깝다.


『삼국지연의』를 예로 들면, 글 쓸 때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종강본 삼국지를 기준으로 하면, 삼국지는 120화로 구성된다. 120화 중에서 상당 부분을 제거해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없고 소설의 완성도도 떨어지지 않는다. 관우가 오관육참장 안 하고 황하를 곧바로 건너가서 유비를 만났다고 해도 되고, 주유가 제갈량을 시샘한 부분을 덜어내도 되고, 화타나 좌자의 일화는 아예 통으로 없애도 된다.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안 준다. 그러나 삼국지에 한 문단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삼국지의 품격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줄 수 있다. 한 문단이면 충분하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병든 제갈량이 누워있고 촉에서 온 유선의 사신이 제갈량에게 후사를 묻는다. 제갈량은 장완과 비의를 추천하고 나서 곧바로 눈을 감는다. 제갈량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제갈량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 줄 띄고 이런 글을 덧붙인다고 하자.


“새파란 놈이 낮부터 쳐자고 있고 팔자 좋구만?”


“익덕, 말을 삼가게. 공명 선생이 듣겠네.”


“들으라고 이러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몇 번째 여기 온 거예요? 우리 형님이 어떤 분인데 비싼 척은 비싼 척이야? 아, 생각할수록 성질나네. 확 불싸지를까보다.”


밖이 소란스러워 자고 있던 제갈량이 눈을 떴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닦는다.


‘뭐지? 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사람은 왜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귀가 왜 저렇게 크고 팔은 또 왜 저렇게 길어?’


눈을 가늘게 뜨고 정신을 수습하던 제갈량이 깨닫는다.


‘아, 시발 꿈이었네.’



(2019.07.21.)



만평으로 만들어본 유시민 ABC론

유시민의 ABC론에 대한 만평을 구글 제미나이로 만들어 보았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 ​ ​ ​ * 뱀발 ​ 어떤 분이 유시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새의 이름이 ‘촉새’냐고 물어보셨다. 생각해 보니 그럴 듯해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