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에 물류창고 건설업체와의 민사소송 1차 공판이 있었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안 봐줄 판이었는데, 원고 측의 조◯옥 변호사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한국농어촌공사 소유의 농로에 묻은 흄관이 장마 때 흙이 밀려서 우리집 사유지에 들어간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1차 공판에서는 양측의 입장만 확인하고 끝났다.
공판이 끝난 후, 나는 상대측 변호사에게 장마 때 흙이 밀려서 흄관이 이동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진심으로 믿느냐고 물었다. 상대측 변호사는 “업체가 그렇다고 하던데요?”라고 답했다. 차마 본인이 그렇게 믿는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업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살인범도 변호하고 강간범도 변호하는 게 변호사인데 싸가지 없는 업체의 귀여운 거짓말을 변호 못 하겠는가? 그런데 변호사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요, 상식적으로 보면 건설업체가 사유지에 흄관을 묻을 이유가 없잖아요. 사유지에 묻으면 개발행위허가 자체가 취소될 수 있는데 그러면 업체가 너무 큰 타격을 입잖아요. 업체가 뭐 하러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어요?”
상식?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변호사를 봤나? 업체가 너무 큰 타격을 입을 위험을 뭐 하러 감수하겠느냐고? 그런 위험을 감수한 업체한테 너무 큰 타격을 입혀주마.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만 해도 충분하겠지만, 증거를 더 충분히 확보하기로 했다.
나는 건설업체가 우리집 사유지 말고도 다른 사람의 사유지도 침범했음을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농로에 묻혀 있어야 콘크리트 사각 집수정이 사유지인 445-1(전)에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굳이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은, 내 땅도 아닌 데다, 그 땅의 주인이 건설업체에 땅을 넘겨서 이 난리가 난 것이라 나에게 그리 협조적이지 않을 것 같았고, 나의 가설을 입증하려면 해당 토지를 경계 측량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자면 측량 비용으로 약 70만 원 정도가 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다른 건설업체가 다른 공사를 하면서 경계 측량을 했는데, 마침 건설업체의 토지 중 하나인 851(답)이 마을 주민의 사유지인 445-1(전)과 인접했다. 건설업체의 경계 측량 때 꽂아놓은 측량용 빨간 말뚝과 위성 지도를 비교하면, 건설업체가 묻은 사각 집수정의 위치가 대략 나온다. 위성 사진에 표시한 빨간 점은 사진에 있는 빨간 말뚝이 박힌 위치로 건설업체 토지와 마을 주민 토지의 접점이다. 이를 통해 사각 집수정은 445-1(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건설업체가 남의 사유지를 침범한 또 다른 증거를 확보했다.
그 사각 집수정은 원래 매설 예정지인 농로로부터 높은 쪽에 묻혔으므로, 만일 이 또한 장마 때 흙이 밀려서 이동한 것이라면 사각 집수정은 흙이 밀려 내려가는 와중에 중력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우리집 사유지에서 벌어졌다고 하는 일보다 훨씬 더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 도대체 내가 사는 동네는 얼마나 신비로운 곳이길래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벌어진단 말인가?
이렇게 사진만 찍어서는 법정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나는 건설업체가 남의 사유지에 사각 집수정을 묻은 것으로 보이니 확인해달라는 민원을 시청에 제출했고, 여기에 위성 사진과 사진을 첨부했다. 시청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1회 답변 연장 끝에 3주 만에 답변을 보냈다. 해당 건설업체에게 경계측량을 요청했으나 거부해서 한 번 더 경계측량을 요청한 뒤 행정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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