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밭에서 불을 놓을 때 연기 사이로 하얀 새가 보였다. 내가 헛것을 볼 정도로 일산화탄소를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왜 하얀 새가 보였을까? 어디서 도망쳐 나왔는지 거위가 밭에 있었다. 거위는 연기 사이로 유유히 걸어 다녔다.
나를 따라 밭에까지 따라온 연동이는 자기도 고양이라고 거위 뒤로 몰래 살금살금 기어가서 거위를 덮치려고 했다. 그런데 거위는 사나운 새다. 거위 키우는 집에서는 개 대신 거위가 집을 지킬 정도로 사납다. 다 자라지도 않은 연동이는 괜히 거위한테 까불었다가 뒤지게 혼나고 도망갔다. 거위는 유유히 밭을 지나 마른 논에 들어갔다.
주말에 처음 나타난 뒤, 거위는 며칠째 마른 논에 있다. 아침마다 특유의 낮은 음색으로 퀑퀑 하는 소리를 내고, 논에 먹을 것이 있는지 하루 종일 논바닥을 뒤적거린다. 주인 없는 거위인지 도망친 거위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나보고 저 거위를 잡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집에 그물과 자루가 있으니까 잡으려고만 들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거위를 잡아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잡아먹을 것도 아니고, 키우려니 거위 집부터 마련해야 하는데 울타리와 지붕을 설치해야 하는 데다 키워봤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오늘은 논 구석에 하얀 새가 웅크린 자세로 있었다. 거위가 며칠 동안 제대로 못 먹더니 굶어 죽었나 싶어서 다가가니 거위가 고개를 들더니 나에게 퀑퀑 하며 짖었다. 죽은 게 아니라 자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거위한테 쌀이라도 약간 줄까 싶다.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