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머니는 1975년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2005년에 돌아가셨는데도 여전히 증조할머니 명의로 되어 있는 땅을 찾느라, 법무사 비용만 350만 원이 들었고, 여러 행정절차를 밟고 2개월에 걸쳐 이의신청을 받기까지 총 6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시청 토지정보과에서 2005년에 그 땅이 할아버지 소유였음을 확인한 확인서를 받고, 세정2과에서 취득세 증명서를 받고, 은행에서 취득세를 낸 다음 등기소에 갔다. 등기소에 가니 등기소 직원이 내가 가져온 서류를 훑어보더니 서류가 미비하니 몇 가지 서류를 추가로 준비해오라고 했다. 등기소 직원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서, 나는 서류만 마저 준비하면 이 일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필요한 서류는 대충 다음과 같다. 우선 취득세 영수필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이건 이미 은행에 취득세를 납부하고 받았다. 등기신청수수료 영수필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은행에서 부동산 한 개당 15,000원을 내고 발급받으면 된다. 국민주택채권매입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은행에 가서 국민주택채권 매입하러 왔다고 하면 알아서 해준다. 토지의 시가표준액이 1천만 원 이상이고 5천만 원 미만이면 해당 토지 시가표준액의 14/1000만큼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해야 하는데, 진짜로 그 액수만큼 채권을 살 필요는 없고 은행에 곧바로 매도하고 할인율만큼만 돈을 낸다. 이것도 은행에서 다 해준다. 위임장은 등기소에 있으니까 가져가서 써오면 된다. 상속과 관련된 사람 중 2008년 이전에 죽은 사람은 제적등본을 발급받아오고, 2008년 이후에 죽은 사람은 기본증명서, 혼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와야 한다. 토지의 다른 상속인들과 관련하여 상속인들의 주민등록초본,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도 발급받아야 한다. 아파트 등 집합건물의 경우 토지대장등본과 건축물대장등본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나는 해당 사항이 없어서 이건 발급받지 않았다.
이렇듯 온갖 서류를 발급받으니 10년 전의 기억이 스믈스믈 떠올랐다. 그 때 내가 법무사 안 거치고 토지 증여한다고 온갖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법무사를 썼는데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난이도 하를 난이도 중으로 올려놓아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는가? 서류만 보강하면 이번 일은 끝난다고 생각하고 등기소로 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등기소 창구에는 지난 번에 왔을 때 보지 못했던 고슴도치처럼 생긴 노인네가 앉아 있었다. 지난 번에는 젊은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대충 둘러보니 사람들 앉은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등기소에서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일하는 모양이었다. 준비해온 서류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휙휙 넘겨보았다. 뭐지? 문제가 있나? 내가 또 서류를 빼먹었나? 그건 아니었다. 서류는 다 챙겨왔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노인네는 시청에서 발급한 확인서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확인서에는 해당 토지가 2005년에 나의 할아버지 소유임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 노인네의 말에 따르면, 등기법상 죽은 사람 앞으로 토지를 등기할 수 없는데 2005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소유임을 확인해봤자 소용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해당 토지가 2022년에 나의 아버지 소유임을 시청에서 확인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번에 젊은 사람이 할 때는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서류만 보강하면 되는 것처럼 말했는데, 고슴도치를 닮은 노인네는 서류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시청 토지정보과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출장을 갔다고 했다.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야 시청 토지정보과에서 전화가 왔다. 등기소에게 들은 말을 시청 담당자에게 전하니, 담당자는 조상땅찾기 특별조치법에 근거한다면 2022년에 그 땅이 누구 땅인지 시청해서 확인해줄 권한은 없으며, 최대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해당 토지가 2005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소유라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렇다. 법으로 보장할 범위 밖에 있는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담당자는 혹시라도 등기소에서 문제가 생기면 등기소 담당자와 통화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지난 번에 다 갖추었는데도 등기소에 또 가야 했다. 등기소 창구에는 고슴도치처럼 생긴 노인네가 또 앉아 있었다. 나는 시청 토지정보과 담당자의 말을 전했다. 그 노인네는 막무가내였다. 굳이 등기 신청을 하겠다면 받아주는데 등기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펄펄 뛰었다. 시청 토지정보과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전달하며 연락해보라고 했지만 그 노인네는 완강했다. 손을 절래절래 저으면 안 된다고 하더니 <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 법조문을 출력해서 보여주었다. 제4조(적용범위) 1항에는 “이 법은 부동산으로서 1995년 6월 30일 이전에 매매・증여・교환 등 법률행위로 인하여 사실상 양도된 부동산, 상속받은 부동산과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어 있지 아니한 부동산에 대하여 이를 적용한다”고 되어 있다. 고슴도치 닮은 노인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연필로 출력본에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렸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노인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당 토지는 1995년에 6월 30일 이전에 양도된 부동산도 아니고 상속받은 부동산도 아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증조할머니 명의의 소유였고 이후에 매매・증여・교환 등 어떠한 법률행위도 없었다. 그러면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어 있지 않은 부동산인데, 시청에서는 그 땅이 할아버지의 소유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등기법상 죽은 사람 앞으로는 등기를 하지 못한다. 증조할머니한테서 아버지로 곧바로 상속이 안 되고 할아버지를 한 번 거쳐야 하는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까 할아버지 명의로 등기가 안 된다. 그러니까 아버지 명의로도 등기가 안 된다.
아니, 그러면 특별조치법은 뭐하러 있는 건가? 그 노인네는 법에 그렇게 되어 있으며 등기 신청을 하고 안 하고는 자유인데 이건 등기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등기 신청을 아예 안 하면 가능성이 0인데 등기 신청을 하면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등기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노인네가 등기 서류를 창구 밖으로 밀면서 이건 접수가 안 된다고 했다. 아까는 하고 안 하고는 자유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예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시끄러워지자 주변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왔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노인네와 비슷한 연령대인 것 같았는데, 한 분은 약간 키가 작으면서 얼굴형부터 이목구비가 모두 둥글둥글했고, 다른 한 분은 키가 크고 차분하게 생겼다. 두 분이 번갈아가며 서류를 보더니 이 일은 등기 신청을 하더라도 통과될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다. 그래도 등기 신청을 하겠다면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렇게 등기 신청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쯤 지났을까? 등기소에서 연락이 왔다. 서류를 잘못 작성했으니 신분증과 도장 등을 챙겨서 등기3계로 오라고 했다. 등기 서류는 등기관 열 명이 심사하여 처리하며 어떤 서류가 어떤 등기관에게 갈지는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등기가 되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심사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면 그냥 떨어뜨리지 굳이 신분증과 도장 등을 챙겨서 등기소로 오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등기소에 또 갔다. 등기3계에 가니 등기관이 서류를 내밀며 소유권이전등기로 신청해야 하는데 소유권보존등기로 신청했다고 하면서, 원칙대로 하자면 신청 취소하고 새로 신청해야 하지만 그냥 서류 몇 개만 새로 작성해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등기는 처리될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다.
내가 지난 번 서류작성하면서 유심히 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그 고슴도치 닮은 놈이 끝끝내 일을 안 되게 하려고 소유권보존등기 양식을 준 것이었다.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증조할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로 소유권이전이 되는 건데, 소유권보존등기를 해봐야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으므로 등기 자체가 안 될 것이었다. 아버지는 독자이고 할머니는 2017년에 돌아가셨으니 할아버지의 유일한 상속자는 아버지이고 그와 관련된 서류도 모두 제출했는데도 그 고슴도치 놈이 그랬던 것이다.
등기3계 등기관이 하라는 대로 몇 부분 다시 써서 제출하자, 지난 번에 봤던 얼굴 구석구석이 동글동글한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유, 좋은 분 만나셨네요.” 처음에 이 등기는 등기가 될 가능성이 했던 등기3계 등기관은 내가 서류를 제출하자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에 등기소에 오세요.” 등기3계 등기관이 마르고 날카롭게 생겼지만 나름대로 인정이 있게 생겼는데, 내가 경제학과에서 보았던 어떤 선생님도 비슷한 외양에 비슷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주 금요일, 나는 등기소에 가서 아버지 명의로 된 등기권리증을 받았다. 난이도 중인 줄 알았는데, 그 고슴도치 닮은 놈 때문에 난이도가 중상으로 올라갔다. 등기권리증을 찾으러 간 날에도 고슴도치 닮은 놈이 창구에 있었는데, 역시나 자리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민원인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일하는데 혼자서 그러고 있었다.
내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등기소 직원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슴도치 닮은 노인네의 경우를 보자. 그 노인네는 약간 미친 것 같지만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등기 신청을 받아들인 것도 법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다. 둘 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허용된 해석 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다. 이 둘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정도로 해석을 명확하게 한다면, 애초에 등기가 될 확률이 반반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등기 확률을 반반이라고 하도록, 등기관 인공지능을 동글동글봇과 고슴도치봇, 이렇게 두 종류로 만들고 어느 쪽에 걸릴지 신청인의 운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인공지능이 등기소의 일도 줄여주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최종적인 판단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통, 인공지능으로 인간을 대체할 때 육체노동은 경제성이 문제가 되고 정신노동은 정당성이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정신노동과 관련된 일에서 인공지능이 업무량을 줄여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강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레이 커즈와일처럼 특이점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거나 특이점까지는 믿지 않으나 그러한 업무의 성격을 잘못 파악한 경우일 것이다. 업무의 성격을 파악하지는 않더라도 그 업무 때문에 고통받은 경험이 있다면 인공지능이 그러한 업무에서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고 쉽게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시원시원하게 개뻥이나 치면서 편하게 먹고사는 사람들이 그런 일로 고통을 받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202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