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9

[과학철학] Lipton (2004), Ch 1 “Induction” 요약 정리 (미완성)

[ Peter Lipton (2004),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 2nd ed. (New York: Routledge), pp. 5-20.

Peter Lipton (1991),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 1st ed. (New York: Routledge). ]

1. 미결정성 (Underdetermation)

2. 정당화 (Justification)

3. 기술 (Description)

1. 미결정성 (Underdetermation)

5

- 귀납 추론은 증거를 따져보고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에 관한 문제이지 증명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귀납추론에 대한 기술(description)과 정당화의 문제는 미결정성에서 비롯된다.

- 어떤 결과가 미결정적이라는 것은, 초기 조건과 규칙이나 원리에 대한 정보가 하나의 해답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6

- 또한 미결정성은 어떤 사람이 배우거나 추론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기술에서 발생할 수 있다.

특정한 규칙들의 집합에서 증거를 기술하는 것은 우리가 배우는 것이나 추론하는 것을 미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증거를 기술하고 그 사람이 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이는 숨은 규칙이 있음을 보여준다.

예) 촘스키의 ‘자극의 빈곤’의 예는 미결정성이 추가적인 규칙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여준다.

6

- 토마스 쿤은 인식적 원리를 조사하는 도구로서 미결정성을 사용하는 또 다른 예를 제공.

과학적 전문성이 발달하는 역사적 기간 동안, 과학자들은 그들이 다루는 문제에 대해 폭넓은 일치를 보인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명시적인 믿음과 규칙, 자료, 연역과 귀납의 일반적인 규칙들, 명시적인 방법론적 규칙들은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판단을 미결정한다. 많은 가능한 판단들이 이들 믿음이나 규칙과 양립가능.

- 쿤은 실제 판단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원리들이 추가되어야만 한다고 논증했다.

과학자들은 교육을 통해 예시를 배우고 그들의 연구를 지도하는 데 사용한다.

예시들은 미래의 연구를 지도하는 ‘지각된 유사성 관계’의 그물을 만들고, 공유된 판단들은 공유된 예시들로 설명된다.

이들 유사성은 규칙이 만들거나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규칙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 패턴의 결과이다.

일반적인 사례에 적용 [pp. 6-7]

- 어떤 추론이 귀납이라면, 정의상 그 추론은 증거와 연역 규칙에 의해 미결정된다.

우리의 귀납적 실행이 방법론적인 한, 우리는 추가적인 규칙이나 추론 원리를 사용해야만 하며,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려는 시도에서 우리의 추론 패턴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 정당화 (Justification)

7

- 귀납의 일반적 원리에 대한 두 가지 중심질문은 기술과 정당화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원리를 사용하며, 그것이 좋은 원리들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

- 기술에 대한 질문이 우선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정당화의 문제가 먼저 등장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질문은 증거와 추론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떠한 원리에 관한 회의적 논증에서 파악되기 때문이다.

7

- 정당화의 문제는 우리의 추론 방법이 좋은 방법임을 보여준다.

- 이를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은 참에 관한 것이다.

- 좋은 연역 논증은 타당한 것이며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정당화의 문제도 우리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논증이 실제로도 타당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 귀납에서 완벽한 신빙성은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귀납 논증이라도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것이 가능하다.

- 그렇지만, 립튼은 이러한 귀납 추론이 참인 전제에서 참인 결론이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7-8

- 정당화 문제에 대한 회의적 논증의 두 구성요소는 미결정성과 순환성이다.

- 첫 번째 논증(미결정성 논증): 주어진 우리의 전제와 연역의 규칙에서, 귀납 추론이 미결정적이다.

그 전제와 규칙은 우리가 하는 추론 뿐 아니라 양립 가능하지 않은 추론과도 양립 가능하다.

- 이는 우리가 실제 하는 추론은 귀납적이며,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원리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가능 세계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또한 우리의 원리가 실패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인다.

- 그러나 우리는 현실세계가 우리의 원리를 신뢰할 만한 곳이라고 믿을 좋은 이유를 가지기 때문에, 미결정성은 회의적 논증을 산출하지 못한다.

- 두 번째 논증 (순환성 논증): 우리는 미결정성이 제기하는 비-신빙성(unreliability)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증명해야 할 것은 사실로 가정한다.

8

- 데카르트의 ‘제1성찰’은 이와 관련된 전통적이지 않지만 고전적인 기술이다.

데카르트의 목표는 ‘감각의 증언(testimony)’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 논증1: 감각은 종종 우리를 잘못 이끌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매우 작고 멀리 떨어진 것일 때’ 그 감각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

- 어떤 것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으므로, 이 논증은 미결정성에 의존하지 순환성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이는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 논증2: 우리가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아무리 명확하더라도, 그것이 꿈이거나 사악한 악마가 유도한 경험이라면, 감각의 가장 분명한 증거도 우리를 잘못 이끌게 된다.

8-9

- 악마 논증은 관찰경험에 의한 관찰 믿음의 미결정성에서 시작하여, 증거에 대한 추론 모형에서 잘못 유도된 추론 원리를 조사하고, 이 원리의 신빙성이 그것을 가정함으로써만 보임을 제안한다.

- 감각에서 추론하는 것은 귀납적이어야만 하고 회의론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은 미결정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다른 토대의 것이어야 한다.

- 코기토와 명석 판명의 원리를 예화하는 것은 비귀납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지지받음.

여기서는 귀납에 대한 회의론이 귀납을 거부하는 것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

9

- 흄도 미결정성에서 시작하는데, 이 경우 우리의 관찰은 우리의 예측을 함축하지 않는다.

- 흄은 우리의 모든 귀납 추론의 원리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균일함(uniform)이고, (관찰할 수 있지만) 관찰하지 않은 세계는 우리가 관찰해온 세계라고 제안했다.

- 그러면 정당화의 문제는 자연이 정말 균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제이다.

이는 우리가 관찰해온 것에서 연역할 수 없다.

그러나 균일성을 논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귀납 논증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균일성의 원리에 의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실로 가정하게 되는 것이다.

- 흄에 의하면, 우리는 귀납을 실행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9

- 귀납 추론의 근본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More of the Same)’는 것이다.

우리는 강한 귀납 논증은 그것의 전제가 전제에서 기술한 패턴의 연속성을 예측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보존적인 원리를 적용하여 과거에 해가 떴기 때문에 내일 해가 뜰 것이라고 예측한다.

- 하지만 과거에 해가 떠왔기 때문에 내일 해가 뜨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있다.

혁명적인 귀납적 원리에 따르면, ‘변화해야 할 때’ 이것은 우둔한 추론(dark inference)을 제재한다.

- 흄의 논증은 보존적인 귀납이 혁명적인 귀납보다 낫다는 것을 보일 방법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9-10

- 보존적인 귀납의 실적은 그것을 믿을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매우 인상적이고 특히 혁명적인 귀납과 비교해서 그렇다.

귀납은 그것이 작동해왔기 때문이 작동할 것이다. 이는 순환적이다.

- 보존적인 귀납이 작동해왔기 때문에 작동할 것이라는 논증은 그 자체로 귀납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과거의 성공은 미래의 성공을 증명하지 못하며 높은 개연성만을 제공할 뿐이다.

10

- 귀납을 정당화하는 문제는 더 나은 귀납적인 표준이 있음을 보여주지 않고 대신 대칭성을 보여준다. 각자 다르고 양립할 수 없는, 많은 표준들의 집합은 정당화 관점에서 동등하다. 이는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정당화의 문제가 부여되는 이유이다.

- 우리가 사용하는 귀납적인 원리가 무엇이든, 귀납적인 원리가 귀납적이라는 사실은 회의론자들이 정당화를 거부함을 보이기에 충분하다. 관찰과 예측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완전히 다른 예측으로 이끄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리고 하나가 다른 것보다 낫다는 것을 보일 방법은 없다.

10-11

- 립튼이 보기에 흄의 도전을 만족할 만한 해결책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정당화의 다른 문제는 이보다 조금 더 다루기 쉽다.

- 특정한 귀납적 원리의 정당화를 요구할 수 있다.

이는 데카르트의 작고 멀리 있는 것의 예처럼, 다른 원리에 호소하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예1) 동질적인 자료의 비슷한 설명의 지지를 받는 것보다 다양한 자료의 지지를 받을 때 그럴듯하게 이론을 추론할 수 있다.

예2) 순환성 없이 정당화 될 수 있는 특수한 원리는, 다른 모든 것이 같을 때, 이론이 그 이론을 구성하는 데 적합한 자료보다는 성공적인 예측을 믿는 것이다.

3. 기술 (Description)

정당화의 문제가 귀납적 원리를 기술하기 전에 제기될 수 있는 이유 [pp. 11-12]

- 귀납적 원리를 정당화하는 문제는 회의적 논증에서 오며, 이 문제는 이들 원리가 귀납적 원리라는 사실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의적 논증은 우리의 귀납적 원리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원리에 의존하는 논증을 사용하는 것이며, 이는 적법하지 않다.

이 논증은 추론의 구체적인 것이 무엇이든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 흄의 논증의 대칭성에서 상세내역의 무관성이 나온다.

보존적 귀납이 과거에 성공한 것에서 그것이 미래에 성공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혁명적 귀납이 과거에 실패했다는 것에서 그것이 미래에도 실패할 것임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

- 그러므로 정당화의 문제는 두드러진다(have a life of one's own). 정당화의 문제는 그 실행이 의문을 던지는 것을 보증하는 것을 자세히 기술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12

- 같은 이유에서, 기술의 문제는 회의적 논증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귀납 추론이 정당화되지 않아도,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것은 흥미롭다.

기술의 문제는 귀납 추론의 실행이 믿을만한지를 보여주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기술할 뿐이다.

- 이 문제는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i) 기술의 문제는 정당화의 문제처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강력한 이유가 없다.

(ii) 기술의 문제는 귀납적 원리를 기술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상당히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iii) 귀납적 원리는 우리의 원리들이며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사용한다.

- 우리가 아직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뿐 아니라 귀납의 전체 구조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설명은 우리의 실제 실행과 불일치한다.

12

- 기술이 왜 어려운가?

그러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차이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그것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 언어 습득의 원리에 관한 촘스키의 연구, 과학적 방법에 대한 쿤의 연구

- 화자와 과학자는 다양한 원리를 적용하지만 그들은 그 원리를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추론을 설명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귀납 추론의 다양한 원리를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13

- 귀납 원리가 내성 가능하지 않고 관찰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의 증거가 직접적이지 않음이 분명하다.

기술에 대한 기획은 블랙박스 추론 중 하나인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관찰하는 증거와 추론에 대한 피상적인 패턴에 기반하여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 부분적인 어려움은 미결정성에 대한 사실이다.

여러 가지 다른 가능한 메커니즘이 존재할 것인데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선택할 수 있는가?

- 그러나 반대로 인식론자들처럼 우리에게는 이와 반대되는 문제가 있다.

관찰되지 않고 관찰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하나 이상의 설명이 존재하지만, 과학자들이 겪는 실제 어려움은 관찰된 사실에 어떤 이론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13

- 정당화에 대한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립튼은 귀납 개념을 습관 형성으로 보는 흄의 발생을 따라 추론의 패턴을 ‘거의 동일한’ 것으로 기술한다. 보존적인 원리는 매우 간단하지만 기껏해야 실제 실행의 캐리커쳐에 불과하다.

- ‘거의 동일한’ 것은 우리가 해온 것의 기반에서 할 것을 예측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생각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13-14

- 일반적인 기술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할 때, 합리적인 전략은 귀납적 실행의 한 부분을 기술하려고 함으로써 시작하는 것이다.

- 귀납적 입증에 대한 초기 모형에 따르면,‘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에 대한 가정은 관찰된 A가 또한 B인 예에 의해 지지받는다(Hempel 1965: ch.1). 이는 귀납 추론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어떤 추론을 하기 전에 이는 우리가 그 가설을 어떻게 생산했고 지지하는 예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말하지 않는데, 문제를 추론에서 지지로 바꾸면 전략적인 단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14

- 이 모형은 귀납적 원리를 매우 부분적으로 기술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이를 참으로 여기게 할 수 있다.

관찰된 예는 귀납적으로 지지하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초기 모형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허용한다.

예) 검은 까마귀만을 관찰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까마귀가 까맣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수염 난 철학자를 관찰하는 것은 모든 철학자가 수염이 났다고 추론하게 하지 않는다.

- 넬슨 굿맨은 초기 모형이 어떻게 어떠한 예측도 승인하지 못함을 보여줌으로써 이 문제를 일반화했다.

그의 기술(technique)은 허구적인 술어를 동반한 가설을 구성하는 것이다.

검은 까마귀는 우리가 볼 그 다음 고니가 하얗다는 것을 믿을 이유를 제공하지 않지만 ‘모든 까니들(raveswans)은 빛난다’는 인위적인 가설에 대한 예를 제공한다.

14-15

- 초기 모형이 직면하는 다른 어려움은 가설이 그들의 예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서 발생한다.

검은 까마귀는 모든 까마귀가 까맣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이 가설은 모든 까맣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라는 대우인 가설과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대우인 가설은 녹색잎 같은 까맣지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의 지지를 받는다(Hemple 1965: ch.1).

- 때때로 보존적 귀납은 일상과 과학적 추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cf. Achinstein 1992), 그것은 기껏해야 그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이며 제한된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된다.

15

- 귀납적 지지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가설-연역적 모형이다(Hempel 1966: chs 2, 3).

이 견해에서 가설이나 이론은 연역적으로 함축하는 자료의 지지를 받는다.

- 이 견해의 이점

(i) 관찰할 수 없는 실재나 과정에 호소하는 가설의 지지를 받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초기 모형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진다. 예) 빅뱅 이론

(ii) 연역적 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귀납적 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보다 더 낫기 때문에 이 모형은 우리가 귀납적 설명에 관한 연역적 설명을 같이 선택(co-opt)하게 한다.

(iii) 가설-연역적 모형은 과학적 실행을 진실로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과학자의 과학철학이 되는 이유이다.

15-16

- 가설-연역적 모형은 초기 모형이 너무 많은 것을 허용(over-permissiveness)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매력에도 불구하고 비판받는다.

예들의 지지를 받는 경우는 또한 귀결들의 지지를 받는다.

- 가설-연역적 모형에 따르면, 모든 A가 B라는 가설은 개체들이 A라는 가설과 함께 그것들이 또한 B라는 것을 함축하며, 관찰된 것이 B라는 것은 그 가설을 지지한다.

즉, 예로 지지받는 어떠한 경우든지 가설-연역적 지지를 받는 경우이고 그래서 그 모형은 지지할 수 없는 가설과 까마귀의 역설의 문제에 직면한다.

- 게다가, 가설-연역적 모형은 관찰할 수 없는 것에 관한 가설에서 수직적 추론(vertical inference)을 하는 경우 유사하게 너무 많은 것을 허용하는데, 이 문제는 초기 모형이 그러한 추론을 모두 무시함으로써 피했던 것이다.

이 어려움은 허구적 술어에 대한 골드만의 문제와 비슷하다.

-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는 전제와 모든 고니는 하얗다는 전제의 연언은 그들이 검정색일 것임을 함축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그 연언은 검은 까마귀에 의해 지지받으며, 그것은 고니에 관한 연언을 함축한다.

그래서 그 모형은 까만 까마귀에서 하얀 고니를 추론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으로 보인다(cf. Goodman, 1983, pp.67-8).

- 이와 비슷하게, 모든 까마귀는 하얗다는 가설은 모든 고니는 하얗거나 검은 까마귀가 있다는 포괄적인 선언을 함축하고, 이 선언은 우리가 검은 까마귀를 찾음으로써 성립할 수 있고, 그래서 잘못된 가설-연역적 가설은 고니에 관한 가설을 지지한다(cf. Glymour, 1980, ch.2).

(중략)

423)

- 기술적(descriptive) 문제를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시도들

: ‘거의 동일하다(More of the Same)’, 초기 모형, 가설-연역적 모형

18

- 귀납에 대한 다섯 번째 설명은 인과적 추론이다.

- 우리가 하는 수많은 추론은 원인에서 그것의 확률적 결과로 추론하는 것에 의존한다.

이는 흄이 강조했던 것이다(Hume, 1748, sec. IV).

예) 의사가 증상에서 질병을 추론하는 것, 탐정이 증거에서 범인을 추론하는 것 등

- 자료에서 예측을 하는 방법에 대한 인과 이론은 과학적 예측의 수많은 극적인 성공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18-19

- 인과적 추론에 대한 가장 유명한 설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실험적 탐구 방법’에 대한 논의다(Mill, 1904, book III, ch. VIII). 중심적인 방법은 일치의 방법(Method of Agreement)과 차이의 방법(Method of Difference)이다.

- 일치법에 따르면, 관찰된 선행 사건들이 공유하는 원인이 하나만 있음을 우리가 알 때, 우리는 그것이 원인이라고 추론한다(book III, ch. VIII, sec. 1).

예) 우리는 숙취의 원인이 과음이라고 믿게 된다.

- 차이법에 따르면, 결과가 일어난 상황과 이와 비슷한 상황인데 그렇지 않은 상황의 유일한 차이를 우리가 알 때, 우리는 결과에 나타난 유일한 선행사건이 원인임을 추론한다(III.VIII.2).

예) 파란 불꽃에 나트륨을 더하면 불꽃이 노란색이 되는데, 나트륨의 존재는 새로운 색깔의 원인임을 추론할 수 있다. 불꽃의 유일한 전후 차이가 나트륨 첨가이기 때문이다.

- 두 방법은 유지(retention)과 차이(variation)를 결합하는 것에 의해 작동한다. 일치의 방법을 적용할 때, 우리는 결과는 일정하게 유지하고 우리가 가능한 한 배경은 변화하도록 하고,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을 관찰한다. 차이의 방법을 적용할 때, 우리는 결과를 변화하도록 하고 가능한 한 배경을 유지하도록 하고, 변하는 것을 관찰한다.

19

- 밀의 방법에는 수많은 특징이 있다. 우리의 많은 추론은 인과적 추론이고 밀의 방법은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설명을 제공한다. 과학에서 통제된 실험은 차이의 방법을 적용한 것이다.

- 밀식의 인과적 추론의 구조는 추론적 논의의 경우에서 특히 명확하다. (보충)

- 밀의 방법은 또한 다른 설명의 지나친 허용함도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변화된 또는 공유된 배경에 대한 필요조건을 그것의 적용에 부여하는 것을 강하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중략)

424)

물론 밀의 방법은 두 가지 골칫거리도 공유한다.

(i) 밀의 방법은 관찰할 수 없는 원인 또는 원인이 존재하지만 원인의 지위는 아닌 것으로 추론되는 인과적 추론에 적용할 수 없다.

(ii) 어쨌든 밀의 방법이 적용된다면, 선행사건에서 단일한 일치나 차이만이 있다는 필요조건은 이상화되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그 조건은 실제 생활에서 절대로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425)

(2017.02.16.)

2022/05/18

‘인문학의 대중화’라는 허상



며칠 전, 과학학과 대학원 과학철학 석사과정에 입학하고자 하는 사람과 상담했다. 원래 그 사람은 지도교수님께 상담 요청을 했는데, 지도교수님은 그 사람에게 답변한 뒤 다른 대학원생의 의견도 들어보라면서 동료 대학원생에게 추가 답변을 요청했고, 그 대학원생은 적절한 답변을 하기 어렵다면서 나에게 대신 답변해달라고 부탁했다. 왜 나에게까지 상담 요청이 건너왔을까? 동료 대학원생은 이메일로 문서 파일을 하나 전달해주었다. 그 사람이 쓴 것이었다. 에세이 제목만 보고도 상담을 요청한 사람이 과학철학에 대해 단단히 잘못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대신 답변하기로 했다.

내가 받은 것은 자기소개서(4매), 연구계획서(5매), 논증 에세이(26매)였다. 다 읽어보았다. 단단히 잘못 알면서도 열의가 대단해 보였다. 동료 대학원생으로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답변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나는 매 학기 한 명 이상에게서 입학 관련 문의를 받았고 대면이든 서면이든 모두 상담했다. 그렇게 상담한 사람 중 실제로 대학원에 온 사람이 아직 단 한 명도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예의 바르게 사실대로 말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내가 맡았다.

일단 질문에 답변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 다음날 상담 요청자에게 이메일이 다시 왔다. 나는 또 답변했다. 그러자 그 다음날 상담 요청자에게서 “명쾌한 답변 감사합니다. 덕분에 주제를 어떻게 잡을지 실마리를 얻은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답장이 왔다. 너무 순순히 받아들여서 약간 의외였다.

내가 두 차례에 걸쳐서 보낸 글은 A4용지 세 쪽도 안 되는 양이다. 이상한 애들은 아무리 멀쩡한 이야기를 들어도 미친 소리를 하기 마련인데, A4용지 세 쪽도 안 되는 글을 받고 나서 상담 요청자가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상해서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뒷받침하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변에서 적절하게 몇 마디 해줄 사람만 있었더라도 해당 학생은 불필요하게 힘을 빼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 사람은 철학과 학생이다. 내가 알기로 그 학교는 좋은 학교이고 훌륭한 선생님도 몇 분 계신 것으로 안다. 교수든 강사든 선배든 지나가는 행인이든 그 학생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딱히 없었던 모양이다.

이는 단순히 그 학생의 인간관계의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학생이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고 하더라도, 수업을 듣고 과제를 내고 시험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과정 중 어느 한 군데에서도 적절한 지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수나 강사가 적절하게 지적했다면 그 말을 진작에 들었겠지, 뒤늦게 고작 대학원생 나부랭이에 불과한 내 말을 들었겠는가?

꽤 좋은 학교의 학부 과정도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인문학 대중화 같은 소리가 씨알이나 먹히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이 수준 높은 대중 강연을 하고 교양 서적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장려되어야 하는 일이며, 필요하다면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대학 안팎에서 똥 싸는 소리나 일삼아하는 사람들이 그걸 인문학 대중화라고 우기고 앉았는 게 정상이냐는 것이다. 학부생도 못 챙기면서 무슨 놈의 인문학 대중화인가? 학부 4년 동안 자기가 뭘 배웠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길 가던 사람을 붙잡고 인문학이 왜 중요한지 아느냐고 하면 그건 약장수가 약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사람들이 책 안 읽는다고 하는 소리는 허구헌날 언론에 나온다. 그게 믿을 만한 통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인문대 졸업자들은 학부 졸업하고 인문학 책을 얼마나 읽는가? 일기장 대충 뜯어서 묶어낸 것 같은 에세이집 같은 거 말고 그럴 법한 책은 몇 권이나 읽는가?

아무리 책을 읽으려는 의지가 강하더라도 그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책은 읽을 수 없다. 4년 동안 인문대를 다닌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읽는 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내가 알기로, 철학과를 졸업하고도 무엇이 철학이고 무엇이 철학이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중앙일간지에서조차 아들러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일본의 철학 책이라고 우기며 한국 철학계를 걱정하는 기사가 나온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룻밤에 읽는 뭐시기 시리즈 같은 책이나 읽는 사람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죽을 때까지 그 정도 수준의 책이나 읽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도 자기와 관련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그 정도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 분야에서 다양한 상품을 소비할 고객을 늘리고 시장을 넓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인문대 학부생을 잘 가르치는 것뿐이다. 그런데 대충 둘러 봐도 그럴 가망은 없어 보인다. 어쩌다 인문대 출신 회사원들을 만나도 그들 중 상당수는 어김없이 낭만이니 실천이니 하는 소리나 늘어놓을 뿐이다. 학부 4년을 다녀놓고도 자기 전공을 전문 분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2022.03.18.)

[외국 가요]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