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체크 - 60’s cardin [온스테이지]
( www.youtube.com/watch?v=blB7q7AAw3Y )
(2019.12.01.)
내가 다니는 대학원이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학과>로 바뀐다. 이름만 바뀐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정확히 뭐가 바뀌는지는 모르겠다. 협동과정에서 정식 학과로 바뀌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선생님들이 알아서 잘 하셨을 것이다.
협동과정의 이름에 있던 ‘과학철학’이 빠지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는다. 교수 임용할 때 실적으로 뽑지 소속 이름으로 뽑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들이 다 제정신인 것은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학과 이름에 철학이 안 들어간다고 임용에 문제가 생기겠는가.
협동과정을 학과로 바꾸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번번이 실패하다가 이번에 성공한 것인데, 과학정책 전공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과학정책 전공이 다른 전공보다 정부 지원을 많이 받기도 하고, 업무 처리 면에서도 다른 전공보다 능숙했을 것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으로 시작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이후에 과학기술학 전공이 추가되었고, 얼마 전에는 과학정책 전공이 추가로 개설되었다. 과학정책 전공이 개설되기 몇 년 전에 협동과정의 정체성에 관하여 생각해보자는 행사도 있었다. 정체성 뭐시기 행사라고 해서 나는 ‘사춘기도 아니고 무슨 놈의 정체성이야? 자기 연구나 잘 하면 됐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행사 때 나는 뒷자리 구석에서 딴 짓이나 하다가 저녁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
물론, 굳이 따저본다면, 정체성 뭐시기 행사를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같은 소속 대학원생 중에는 과학기술학 전공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석사학위 취득 후 과학정책 박사과정으로 입학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40년 전통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정책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고 자기자신을 소개하면, 정상적인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치,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100년 전통의 <공화춘>에 함흥냉면 먹으러 갔다가 재료가 떨어져서 꼬마돈가스 먹고 나왔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과정이 과학학과로 바뀌어서 확실하게 좋아지는 점은 서류 작성할 때 편해진다는 것이다. 서류 작성할 때마다 소속란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라고 써야 하기 때문에 항상 칸이 넘치게 되고, 그래서 글자 크기를 줄이거나 칸 밖에 글자를 써야 했다. 이제는 소속명이 짧게 바뀌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밖의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협동과정이 과학학과로 바뀌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동안 내가 추적하던 <◯◯◯ 코드>의 비밀을 더 이상 알아내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협동과정 졸업생 중에는 자기가 쓴 책 등에 자신이 “과학사 협동과정”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쓰는 사람이 있다. 오타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번하게 나타나서 어떠한 비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일종의 코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책이나 논문의 앞부분에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하다가 중간이나 끝에서는 “과학사 협동과정”이라고 하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설마 과학철학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소속명을 그렇게 쓰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유치하게 그런 짓을 할 리가 있는가?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나는 <다빈치 코드>에서 착안하여 해당 졸업생의 이름을 따서 그 코드의 이름을 <◯◯◯ 코드>라고 명명했다. 협동과정에 템플 기사단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 졸업생이 일루미나티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어떤 메시지가 있으니 저작마다 반복하여 그런 코드를 넣지 않겠는가 추측할 뿐이다. 내가 그동안 제안한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 코드>도 정식 학술 용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코드>의 비밀을 밝히려면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한데, 협동과정이 과학학과로 바뀌면서 이제 더 이상 <◯◯◯ 코드>는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 코드>의 비밀도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학학과”를 “과학과”나 “과과”라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 뱀발: 내가 협동과정이 학과로 바뀌면서 <◯◯◯ 코드>의 비밀을 알아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하자 동료 대학원생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 ‘과학학과’를 ‘과학사학과’로 쓸 걸요? 열두 글자에서 네 글자 빼는 것보다는 네 글자에서 한 글자 더 하는 게 더 쉽고 티도 덜 나잖아요.” 내가 이 생각을 왜 못 했을까. <◯◯◯ 코드>의 새로운 변형이 나오는지 지켜보아야겠다.
(2020.12.20.)
과학사에는 양립불가능한 이론들이 경쟁을 벌이는 사례들이 종종 나온다. 어떤 경우는 두 이론의 설명력이 동등하다고 하고, 어떤 경우는 두 이론 중 한 이론이 어떤 이점을 가지고 다른 이론이 다른 이점을 가진다고 한다. 나는 과학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설명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당대의 과학 활동을 재현해본다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당대 과학자들이 했던 문제 풀이 정도라도 따라해 본다면, 뭔가 몰랐던 점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과학사 수업을 그렇게 많이 들은 것은 아니라서 자신 있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들은 것만 놓고 본다면, 과학사 수업에서는 과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과학에 관한 것에 관한 것을 다루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과학사 수업을 듣고 당대 과학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이해가 늘어났을지는 몰라도 당대 과학에 관한 이해는 거의 늘어난 것 같지 않다.
하버드대에 교환 학생으로 다녀온 대학원 선배에 따르면, 하버드대에서는 학부 과목으로 <18세기 물리학사> 같은 과목도 개설된다고 하며,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당대 물리학에서 문제가 되었던 문제들을 연습 문제 풀듯이 직접 종이에 풀어보기도 한다고 한다. 수업이 <과학사>나 <물리학사>이었다면 진도 나가기 바빠서 문제 풀이 같은 것은 못했을 텐데 <18세기 물리학사>로 한정 지으니 문제 풀이 같은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학부 수업으로 <18세기 물리학사> 같은 것을 개설할 수 있을까? 전공과목으로 개설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수업을 개설할 학과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있는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국사학과처럼 과학사학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수업을 개설할 수 있을 텐데 한국 대학에 그런 학과는 없으니까 전공과목으로는 개설할 수 없다. 그런데 전공과목으로 개설하지 못한다고 <18세기 물리학사> 같은 과목을 개설하지 못 하나? 전공과목이 안 되면 교양과목으로 개설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너무 부담스러워할 것 같으면, 성적 부여방식을 A/F가 아니라 P/F로 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대체로 교양 수업이라고 하면 전공 수업의 약화된 버전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전공 수업보다 더 센 교양 수업이 있으면 왜 안 되는가?
<18세기 물리학사> 같은 과목을 교양 강의로 만들면 누가 듣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과대생이나 공대생이 들으면 된다. 이과대생이나 공대생도 어차피 교양 학점을 이수해야 하니까 그들 중 일부가 수강할 것이다. 약간 좀 별난 학생들, 취향이 고상한 학생들, 방황하는 학생들 등을 꼬시면 수업 개설 인원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부 <경제학사> 같은 수업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방식의 <경제학사> 수업은 일종의 사상사 수업 비슷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사상을 잡다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가? 차라리 다루는 범위를 줄여서 특정 시기의 경제학사를 다루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연습 문제를 풀면서 경제학자들이 실제로 고민한 이론적인 문제와 해결 방식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학부 교양 수업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12.19.)
자연과학대학 건물은 이상하게 되어있다. 501동, 502동, 503동, 504동, 이렇게 건물 네 동을 하나로 붙여놓고는 ‘500동 건물’이라고 부른다. 밖에서 보면 건물들이 따로따로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가 보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다. 건물 구조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갈 때마다 길을 못 찾고 헷갈린다. 왜 건물을 이렇게 만들어놓았을까.
이것과 비슷한 것이 불교 건축물 중에도 있다. 금산사 미륵전은 밖에서 보면 3층 건물인데 들어가 보면 단층 건물이라고 한다. 내가 아직 금산사를 가본 적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구조의 건물을 중국에서 본 적이 있다. 소주에서 보았는지 항주에서 보았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역시나 밖에서 보면 3층이고 안에서 보면 단층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 단층 건물인데도 밖에서 보면 3층인 것처럼 해놓은 것은 건물의 높이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안에서 보면 단층인 것은 부처님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자연과학대학 건물을 그렇게 만든 것도 일종의 상징성이 있는 것인가? 건물 네 동을 붙여놓은 것은 자연과학대학의 규모를 보여주는 것이고 건물 내부가 하나로 붙어있는 것은 자연과학대학의 일체감을 보여주는 것인가? 물론 이건 개소리이기는 한데, 왜 그런 식으로 건물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20.12.17.)
2 Unlimited - Twilight Zone [1990년대 에어로빅 할 때 많이 나왔던 음악]
( www.youtube.com/watch?v=ecrf9uoHSTc )
2 Unlimited - No Limit
( www.youtube.com/watch?v=r6FVk2k4qsM )
(2021.04.19.)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